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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통일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5주) 제주 4.3의 이해 (증언)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5주) 제주 4.3의 이해 (증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68회 정기총회에서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할 것”(시 34:14)을 다짐하고,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 2020년을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실현하는 “희년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이 희년운동의 일환으로 세계교회협의회 (WCC)와 함께 3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반도평화를 위한 세계기도운동”을 전개하오니, 이번 주부터 매주 보내드리는 기도문 (혹은 신앙간증문)을 가지고 교회와 가정, 직장과 각 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 기도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증언) 제주4·3에 대한 이해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무처장 양성주 들어가며 70년 전 제주도민의 전체 인구의 약 10%인 3만 정도가 희생된 사건인 제주4.3이 어떻게 국민들이 전혀 모르게 되었을까? 화산도의 저자 김석범은 이것을 ‘기억의 자살’이라고 표현했다. 제주4.3은 입 밖에 내놓을 수 없는 일, 알고서도 몰라야 하는 일, 공포에 질린 섬사람들 자신이 스스로 기억을 망각으로 들이쳐서 죽인다고 했었다. 제주도민에게 그 동안 제주4·3은 철저히 금기어였으면 자식에게 조차 보고, 경험한 것을 얘기하지 않았다. 부모들은 “속숨허라!”(조용히 입다물라는 제주어)고 하는 것이 전부였다. 민주화가 되기 전 반세기 동안 제주4·3은 철저히 권력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진실된 교육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4·3폭동이 발생하였다고만 교육을 했던 것이다. 2000년에 들어와서야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하 제주4·3 특별법)이 제정되고 2003년 진상보고서가 정부에 의해 발간되면서 그 진상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2014년에는 국가추념일로 지정일로까지 지정이 되었지만 아직도 제주4·3을 제대로 알고 있는 국민은 소수에 불과하다. 해방된 제주 일제강점기 시대 제주는 일본의 왕래가 육지 가는 것보다 쉬웠다. 일본을 왕래하는 배편이 제주도를 전역을 돌면서 인력을 수송하였던 것이다. 해방이 되면서 당시 인구가 20만 정도였는데 6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제주도 다시 돌아와 해방된 제주 건설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의 인민위원회는 제일 오래까지 존속하였고 미군정에서도 초기에는 존재를 인정하고 협력적이었다. 군정의 정보요원으로 근무했던 E.그랜트 미드는 “제주도 인민위원회는 모든 면에서 제주도에서의 유일한 당이었고 유일한 정부였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군정이 친일, 우익세력을 앞세우면서 인민위원회와는 대립을 하게 된다. 해방후 제주도민의 일상의 생활은 상당히 고달팠다. 많은 인구가 일본에서 돌아왔으나 재산을 전혀 가지고 올 수 없었고 돌아온 고향에서는 일자리가 없었다. 생필품과 쌀이 모자라 물가가 폭등 하였는데 미군정의 대책은 전무하였다. 일제에서 관료로 있던 자들이 여전히 관료로 등용된 가운데 이들은 부정부패가 만연하였고 경찰 모리배들은 도민의 불만을 더욱 가중 시켰다. 3.1절 기념대회 발포사건 1947년 3.1절 기념대회는 제주4·3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기점이라 여겨진다. 해방이 되었으나 또다시 미군정의 지배를 받으면서 증폭된 불만은 3.1절 기념대회를 통해 분출하게 된다. 각 읍면에서 별도의 기념대회가 개최됨에도 북국민학교에서 개최된 기념대회는 제주도에서 유래 없는 3만의 인파가 모여 ‘3.1정신 계승하고 자주독립을 쟁취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국민학교에서 기념대회를 마치고 관덕정을 시위대가 거의 빠져나갈 즈음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이는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경찰은 다친 아이를 두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지나갔다. 이에 흥분한 군중들이 돌멩이를 던지고 항의하며 경찰을 쫓아갔고 경찰이 경찰서로 도망가는 순간 총성이 울렸다. 육지에서 내려온 응원경찰들이 시위대가 경찰서를 습격하는 것으로 오판하고 발포한 것이다. 이 총격으로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대부분이 등에 총상을 입은 것으로 봐서 도망가는 사람들을 향해 총격을 가한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총상을 입은 사람 중에는 국민학생과 젖먹이 안고 있던 20대 여인도 포함되어 있다. 발포 사건은 분명히 경찰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다. 이에 제주도민의 민심이 들끓었다. 3.10총파업과 무자비한 탄압 폭발한 민심은 1947년 3월 10일 총파업에서 드러났다. 노동자,학생,통신기관,운송기관,공무원 심지어 경찰까지 전 도민의 90%가 파업에 동참하고 발포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한다. 당시 제주출신 박경훈 도지사는 모든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며 항의성 사퇴서를 제출한다. 하지만 미군정은 경찰의 책임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으로 탄압을 한다. 제주도민의 불만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억압하면서 사태를 해결하고자 했다. 3.1대회 참가자 검거자 수는 한 달 만에 500여명이며 4.3봉기 이전까지 2,500여명에 대해 대대적인 검거를 하면 탄압하였다. 박경훈 후임으로 유해진도지사가 오면서 서북청년회가 제주로 오게 되는데 제주도민들은 이들의 횡포로 치를 떨었다. 북한에서 토지개혁과 친일청산 과정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자들로 구성된 서북청년회는 공산주의자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반감을 드러냈고, 경찰에 소속이 되었지만 급료가 없어 제주도민을 약탈하면서 생존을 하였다. 전 제주도민이 좌익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제주도민을 죽이는 일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런 과정에 1948년 3월 경찰에 연행됐던 청년 3명이 연달아 고문을 받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제주도민 사회의 불만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 남쪽만의 단독선거를 한 달여 앞둔 시점인 1948년 4월 3일 남로당제주도당이 중심이 되어 제주도내 경찰서, 서북청년회 및 우익인사에 대한 습격이 발생한다. 비밀리에 운영 되던 조직이 노출되면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 남로당제주도당을 중심으로 결성된 무장대가 경찰과 서청의 폭압에 대한 저항, 단독선거 반대를 기치로 봉기를 한 것이다. “탄압이면 항쟁이다!”고 선언하며 제주도내 24개 경찰서 중 12개 지서를 습격하여 경찰 및 우익인사 14명이 사망하게 된다. 이때 무장대의 규모는 350명 정도이며 4.3 전 기간을 통해서 500명을 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무기는 일본식 소총 몇 정과 수류탄 몇 발 그리고 죽창이 전부였다. 미군정은 북한과 연계된 공산주의자들의 난동으로 규정하였으나 당시 국방경비대는 사태의 본질은 제주도민과 경찰, 서청 사이의 충돌이라고 이해하고 개입을 꺼려했다. 하지만 미군정의 지휘를 받는 군은 사태 진압을 위해 나설 수밖에 없었다. 당시 9연대장인 김익렬 중령은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무장대 사령관 김달삼과 4.28 평화해담을 성사시켜 협상에 의해 사태를 종결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미군정에 의해 조작된 5월1일 오라리 방화사건에 의해 협상은 결렬된다. 오라리 방화 사건은 평화회담이 성사된 이후에 미군정이 무장대에 일어난 방화 사건인 것처럼 꾸민 것으로, 방화 장면을 촬영하여 제주도를 레드아일랜드라고 적극 홍보하였다. 이에 대해 항의하는 김익렬연대장을 해임하고 박진경연대장을 후임으로 임명한다. 이후에는 강경진압에 의한 해결을 최우선으로 하였다. 박진경은 미군정장관 딘 소장의 총애를 받던 인물로 “제주도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그는 과도한 진압을 거부하는 문상길 중위 등에 의해 피살된다. 문상길 중위 등은 “민족의 반역자를 처형하였다” 법정진술하였다. 5.10 선거와 이승만정부수립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1948년 5월 10일 선거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지역 3개 선거구 중 2개의 선거구에서 투표수 미달로 실시하지 못하였다. 1948년 8월 15일 정부를 수립한 이승만정권은 자신의 정통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여기고 제주도에 대해 철저한 탄압을 지시한다. 1948년 10월 17일 송요찬 연대장을 포고령을 통해 “해안선 5km 이상에 대해 소개령을 내리고 그곳을 출입하는 사람을 무조건 사살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1948년 11월 17일 불법적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무차별적인 학살이 벌어지게 된다. 제주4·3사건 중에 발생한 대다수 희생자가 1948년 11월부터 1949년 3월까지에 집중되었다. 이 시기에는 어떤 재판도 근거도 없이 어린아이, 노약자, 부녀자 가릴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학살을 자행하였다. 전체 희생자 중 10세 이하 어린이와 60세 이상 노인의 비율이 12%에 달하며, 여성의 비율의 21.3%에 달한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과도한 진압이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수치이다. 희생된 숫자도 엄청나지만 그 토벌과정에서 가족 중 사라진 사람이 있으면 대신 죽이는 대살을 하고, 부녀자에 대한 겁탈을 하는 등 자행된 야만적인 행위는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1949년 3월에는 무장대 세력이 거의 궤멸상태에 이르게 되고 6월 7일에는 김달삼에 이어 무장대 사령관에 오른 이덕구가 사살되면서 실질적인 제주4.3이 종결되는 듯했다. 예비검속과 수형인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또다시 제주4·3의 비극은 재연된다. 육지에서는 보도연맹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해 예비검속하였고, 제주에서는 4.3사건으로 인해 재판을 받았거나 가족이 입산한 경우 등 요시찰 대상자에 대해 검속을 실시한다. 이로 인해 제주도내 4개 경찰서에 예비검속 된 인원은 1,120명이었고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서 수장되거나 비행장 등에서 암살되었다. 또한 4.3사건으로 불법군사재판에 의해 전국 형무소로 끌려갔던 2,500여명도 전쟁 발발이후 행방불명되었으며 아직도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피해규모 당시 제주도민 27만명 중 1/9에 해당하는 3만명 정도가 희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희생자로 공식 결정된 인원은 14,232명이며 이중 사망자는 10,245명, 행방불명 3,575명, 후유장애 164명, 생존수형인 248명이고 토벌대에 의한 희생이 84.3%, 무장대에 의한 희생이 12.3%이다. 희생자 신고자 수가 예상 인원보다 적은 것은 가족 전체가 몰살된 경우도 많고 마을 전체가 희생된 경우도 있어 파악에 어려움이 있다. 강요당한 침묵의 세월 50년 제주4·3사건은 철저하게 ‘공산주의에 의한 4.3폭동’이라고 50년 동안 규정되고 교육되어 왔다. 4.3이라는 이름이 말하듯 1948년 4월 3일에 무장봉기에 의해 파출소와 우익인사가 피습을 당했던 것을 근거로 무장대세력과 대다수 제주도민을 폭도로 매도하여 왔다. 피해가족과 4.3의 진실을 알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은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 했으며 너무나 아픈 상처를 가슴에 묻었던 부모님 세대는 자식들에 조차 아무런 말씀도 할 수 없었고 기나긴 침묵의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2000년 제주4.3특별법 제정을 통해 4.3의 기점이 1948년 4월 3일이 아니고 1947년 3월 1일임을 천명하였고, 진상보고서를 통해 국가폭력에 의해 대다수 민간인의 희생된 사건임을 규정하였으며 이를 근거로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도민에게 사과를 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불법재판으로 전국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행방불명된 분들에 대한 진상규명, 유해발굴과 DNA분석을 통한 신원확인과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개별보상 등 해결과제들이 있으며 책임자에 대한 조사와 처벌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주4·3사건의 이름은 아직도 명미정 제주4.3평화공원 전시관에 들어서면 맨 처음 만나게 되는 조형물이 백비이다. 아무것도 쓰지 않은 비석이 누워있다. 제주4·3은 보는 시각에 따라 ‘4.3폭동’‘4.3항쟁’‘4.3민주화운동’‘4.3통일운동’‘4.3학살사건’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하지만 처한 각자의 입장에 따라 격하게 대립하고 있어 정명을 하고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방 이후와 3.1발포 사건을 거쳐 저항했던 제주도민의 정신이 반영된 이름으로 명명 되어야 할 것이다. - '한국교회 88선언 30주년 기념 국제협의회 '평화를 심고 희망을 선포하다' 자료집, 54~57쪽. (Story Telling) On the Jeju Incident Mr. Yang Seongju, General Secretary, Jeju 4.3 Family Introduction How was it that the 70-year-old incident, the Jeju Incident that killed approximately 10% of the Jeju population, 30,000 people, was left completely unknown to the rest of the country? Kim Seokbum, the author of ‘Hwasando’ translated this as the ‘self-slaughter of memories’. The Incident was not something to be spoken of and not something to be known. The terror-struck islanders forced themselves to completely rid their memories of the incident. The incident was a taboo for the people in Jeju, and even their children were forbidden to hear or know of it. All parents would say was ‘Soksumhura!’, which meant to be quiet in Jeju. For the past 50 years before Korea’s democratization, authorities distorted the truth behind the Jeju Incident and none were taught about the whole truth. All that was taught was that it was the Communists that led the ‘uprisings’ in Jeju. The truth has begun to reveal since the 2000s when 4.3 special law (the Special Act on Jeju 4.3 Case Identification and Recovery of Victims) was enacted. In 2003, when the government issued a report on the truth of the incident, then did the public become aware of what happened. In 2014, the government designated April 3rd as a national Memorial Day, but still very few are well-informed about the Incident. Jeju, Liberated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it was easier for the Jeju residents to travel to Japan than to mainland Korea. It was because ships from Japan navigated the Island to transport human labor. Jeju’s population was about 200,000 upon liberation but an extra 60,000 returned from Japan and took part in rebuilding the island. The People’s Congress in Jeju was the longest surviving in Korea. The US military showed efforts in the beginning to acknowledge the Congress. According to E. Grant Mead who worked as a security officer for the US military back then, the Jeju People’s Congress was the only existing party in the Island and in fact, the only existing government. But as time passed, the US military came into conflict with the Congress as it began to support the pro-Japanese and rightist groups. Life in Jeju after liberation was hard. Many returned from Japan but returned with empty hands and many were left without jobs in their hometown. Inflation soared from lack of daily necessities and rice but the US military provided no countermeasures. Those who served as public officers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were re-appointed and therefore corruption was prevalent and the islanders were frustrated by frequent racketeering by the police. March 1st Commemoration Shooting Incident The March 1st (1919) Commemoration in 1947 is considered as an important starting point for the Jeju Incident. The growing resentment against the US military rule broke out during the March 1st Commemoration. Each village and town held their own separate Commemoration. In the North Elementary School, an unprecedented number of 30,000 participated and raised their voices to uphold the spirits of the March 1st day and fight for independence. After the Commemoration when the demonstrators were about to leave the Gwandeokjeong Pavilion, a child got hit by a horse hoof. The police who was riding the horse, however, simply did nothing and left. Enraged, the demonstrators threw rocks at the police and protest. Just when the policeman was making a run for his headquarters, there was gunfire. The police force from mainland Korea thought the demonstrators were attacking the police department and fired. Six died and eight were injured from the shots, and judging from the fact that most injuries were found on the back, the police probably shot those who were running away. Among the injured included an elementary school student and a woman in her twenties carrying her baby. The police were completely at fault for the shootings. And the people of Jeju were infuriated. March 10 General Strike and Brutal Oppressions The infuriated islanders went on a strike on March 10. Ninety percent (90%) of the population including workers, students, civil servants in the transportation and telecommunication department, and even the police requested punishment for the shootings. The then Jeju governor, Park Kyunghoon, took the blame and decided to resign from his position, protesting the shootings. The US military claimed the island as a ‘Communist Island’ and began oppressing the people. Rather than trying to resolve the issue, the US military decided to suppress the Islanders. In just a month, 500 people were arrested for participating in the March 1st Commemoration and by the April 3 Incident, approximately 2,500 were arrested. Along with Governor Yoo Haejin, Park’s successor, the Northwest Korean Youth Association also came to Jeju. Their despotism was unbearable for the Islanders. The Association consisted of those who left North Korea when the government went under land reforms and drove pro-Japanese out of the country, and consequently, they heavily resented the North. Though they were part of the police force they received no wages, so they plundered the Islanders. Because the Association strongly believed that all the Jeju citizens were leftists, they killed people without any sense of guilt. In March 1948, when three young men were taken to the police and died of excessive torture, the islanders could no longer tolerate the violence and cruelty. Armed Uprisings in April 3, 1948 On April 3, 1948, about a month before South Korea was to hold an election under the United Nations, the Jeju South Labor Party led an attack on the police, the Northwest Korean Youth Association and the rightist headquarters. The Party initiated the attack for fear of having their secret organization exposed. The uprising’s main aim was to protest against the oppression and the coming up elections. As they shouted, “suppression provokes protest!”, they attacked twelve out of 24 police headquarters. Fourteen police and rightists died in the attack. There were about 350 protesters, and from what we know about the events leading up to the April 3 Incident, the number did not exceed 500. Weapons used were limited to a small number of Japanese rifles, grenades, and bamboo spears. While the US military saw the Incident as revolts by North-affiliated Communists, the National Defense Guard understood it as a conflict between the citizens and the police force and was reluctant to interfere. But under the US military rule, the Guards had no choice but to act. Kim Ikleul, the then commander of the 9th regiment, wanted to resolve the issue peacefully through the negotiations with the commander of the armed demonstrators, Kim Dalsam, on April 28. But the talks failed when the US military framed the demonstrators for the May 1st Orari arson attack. In framing the demonstrators, the US military took pictures of the fire and publicly referred to Jeju as a red island. The US military fired Kim for not following suit and appointed Park Jinkyung, as his successor. Park deemed suppression as the solution. As a trusted official of Major General Dean of the US military, Park claimed that “it would be fine to sacrifice 30,000 Jeju citizens to suppress the armed demonstrators.” He was later assassinated by lieutenant Moon Sanggil who opposed excessive crackdowns. In court, he testified as to how “he executed the nation’s traitor.” May 10 Elections and the Lee Seungman Government On May 10, 1948, the elections to form a national constituent assembly failed only Jeju as two out of three electoral districts in Jeju failed to meet the number of vote designated by law . The Lee Seungman government which began its rule on August 15, 1948, regarded such as challenge against his legitimacy and began to suppress the Islanders. On October 17, 1948, through Colonel Song Yochan, Lee Seungman issued a decree stating “an eviction would be issued for areas within 5km of the coast and anyone who enters the area would be killed.” On November 17, 1948, an illegal martial law was declared, which led to indiscriminate slaughtering. Most of the casualties that took place during the Jeju Incident were concentrated between the November 1948 and March 1949. During this period, children, the elderly and women were killed indiscriminately without the support of any judicial or moral explanation. Children under 10 and elders above 60 made up 12% of the entire victim’s population and women made up 21.3%. The numbers clearly show how the people were killed regardless of gender and age. Such numbers, however, do not show in full extent how cruel and barbaric the suppressions were – family members were killed for another family members who disappeared or joined the uprising, and there were also severe rapes. As of March 1949, the armed demonstrators were almost and completely eradicated and by June 7, Kim Dalsam along with his successor Lee Dukgoo were killed, putting an end to the Jeju Incident. Preventive Custody and Convictions The onset of the Korean War spurred back the tragedies of the Jeju Incident. In mainland Korea, those affiliated with the Federation Protecting and Guiding the Public (National Guidance Alliance) were taken into preventive custody. People who were blacklisted, such as those tried in the court for the Jeju Incident or had family members flee to mountains, were also taken into custody. 1,120 people were detained in Jeju’s four police stations and most of them were killed at sea or the military airports. Furthermore, about 2,500 people who joined the Jeju Incident were given jail sentences in illegal military trials. Since the Korean War they went missing, the truth on this has yet to be revealed. Calculating Damage Approximately a ninth of the 270,000 Jeju population back then was victimized by the Incident. Officially about 14,232 people suffered casualties and among them, 10,245 died, 3,575 went missing, 164 traumatized and 248 under a life sentence. 84.3% was killed by the punitive force and 12.3% from the armed forces. Official numbers are lower than the actual casualties because in cases where an entire family or town was wiped out, the numbers are hard to predict. 50 Years of Forced Silence For the last 50 years, Jeju 4.3 has been defined and educated as a communist riot. As the date April 3 shows, the single day incident (when armed demonstrators attacked the police and the rightist headquarters) was used to wrongly accuse the demonstrators and the rest of the Jeju people. Family members of victims and those who tried to reveal the truth of the Incident had to endure long periods of hardship, and the generation that was forced to keep the secret even from their children had to suffer great pain too. When the Jeju 4.3 Special Law was enacted in 2000 it was declared that the start of the incident was not on April 3 in 1948 but rather on March 1 in 1947. It was further declared that the Incident was where many Jeju citizens were victimized by state violence. Consequently, President Roh apologized to the people of Jeju. There are still many unsolved issues such as the truth about people who went missing after being imprisoned from illegal trials, finding the missing bodies and carrying out DNA identifications, and providing reparations for victims and their families. Lastly, inspections and punishment for those who committed crimes have not been carried out yet. The Jeju Incident has yet to be properly named The first sculpture one comes across when entering the Jeju 4.3 Peace Park’s exhibition center is a white monument. Nothing is written on it. Depending on how it is perceived, the Jeju Incident is called various names ranging from ‘April 3 Uprisings, April 3 Protests, April 3 Democratization, April 3 Unification movement, and April 3 Massacre’. Because positions markedly differ on the issue, the naming of the Incident is a difficult one. The Incident should be named reflecting the spirits of the Jeju people who actively protested following Korea’s Liberation and the March 1 Commemoration Shootings. - 'International Conference in Celebration of the 30th Anniversary of the 88 Declaration of the NCCK' pp70-73.
2020-03-30 17:02:58
화해·통일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5주) 평화를 위한 기도12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5주) 평화를 위한 기도12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68회 정기총회에서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할 것”(시 34:14)을 다짐하고,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 2020년을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실현하는 “희년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이 희년운동의 일환으로 세계교회협의회 (WCC)와 함께 3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반도평화를 위한 세계기도운동”을 전개하오니, 이번 주부터 매주 보내드리는 기도문 (혹은 신앙간증문)을 가지고 교회와 가정, 직장과 각 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 기도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 12샬롬의 하나님!저희에게 평화로운 세상 가운데서 생명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며 살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셨음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희는 70년 전 한반도에서 형제자매를 서로 죽이고 싸우는 전쟁의 비극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로 인해 서로에 대한 증오와 불신, 폭력의 악령이 지금까지도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증오가 아닌 사랑의 마음을 부어 주소서. 폭력의 악령이 아닌 평화의 영이 저희 심령가운데서 샘솟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희 마음이 깨끗해지고, 저희보다 앞서서 갈라진 남북한을 하나로 연결하시고,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공동체로 이끄시는 주님의 샬롬의 경륜을 보게 하시고, 그 초대에 응답하게 하소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여 !주님은 세상의 폭력과 죄악을 없애시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비폭력 평화의 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세계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혜롭고 담대하게 평화의 십자가를 짊어지게 하소서. 불의하고 폭력적인 분단체제에 대해 단호하게 ‘아니오’를, 정의롭고 평화로운 한반도 체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예’를 말하게 하소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분단의 갈릴리 땅에서 새로운 평화의 씨앗을 심게 하소서. 소통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시는 성령이시여!70년 동안 너무도 다르게 살아온 남쪽 사람들과 북쪽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하나의 민족공동체로 회복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세계의 정의로운 평화와 화해, 일치를 향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 민족과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여 주소서. 이 일에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연결되게 하시고,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성삼위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에 더욱 깨어 있게 하시고, 열려 있게 하소서. - 이진권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새봄교회)Prayer for Peace 12God of peace, We give you thanks for what you have given us the full blessings of life in a peaceful world. But Koreans went through the tragedy and suffering of war, killing brothers and sisters and fighting each other 70 years ago. Evil spirits of hatred, disbelief, and violence against each other have continued to crush the Korean Peninsula. Pour out your love upon us so we may overcome our hatred toward each other. May the spirit of peace, not the evil spirit of violence, spring up in our hearts. May our hearts be cleansed, unite the two Koreas into one, and show us your Shalom that leads us to peace, reunification, and prosperity. Help us to respond faithfully to your invitation to a peaceful world.Our Lord, Jesus Christ,You died in the cross and opened the way of nonviolent peace to get rid violence and sin in the world. May the Christians in Korea and in the world carry the cross of peace boldly to build a peaceful Korean Peninsula! Help us to say “no” to unjust and violent divisions, and “yes” to a just and peaceful Korean Peninsula. Plant new seeds of peace in the divided Galielee (Korea) with the power of resurrection! Holy Spirit, May the North Korean and South Korean citizens, who have lived so differently for 70 years, respect the social cultural differences caused by the separation, and restore one another as one nation.May we be born again into a nation that bears the priesthood for just peace, reconciliation, and unity of the world! For this, let the churches in Korea and the world be connected with one another! May we be more awake and open to the presence and activity of the Holy Trinity!In Jesus’ name, we pray. Amen!-Rev. Jin Gwon Lee (Saebom Church, PROK)
2020-03-30 16:43:48
화해·통일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5주) 평화를 위한 기도11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5주) 평화를 위한 기도1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68회 정기총회에서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할 것”(시 34:14)을 다짐하고,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 2020년을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실현하는 “희년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이 희년운동의 일환으로 세계교회협의회 (WCC)와 함께 3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반도평화를 위한 세계기도운동”을 전개하오니, 이번 주부터 매주 보내드리는 기도문 (혹은 신앙간증문)을 가지고 교회와 가정, 직장과 각 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 기도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 11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겨 놓는다. 너희에게 나의 평화를 준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내가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겸손히 당신 앞에 나와서 우리의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주님의 평화가 전 세계 모든 사람들, 특히 현재 분쟁 중이거나 전쟁 중인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을 요청합니다. 나라들 사이에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게 하시고, 이웃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찬 모든 사람들이 평화로운 삶을 갈망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모든 분쟁을 없애고 불화에 대한 모든 유혹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시민 당국에 지혜를 허락하시고 포로로 잡힌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소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보호하여 주시고, 고통 받는 난민을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주님을 존경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소서. 당신은 평화의 왕이시고 우리 영혼의 구주이시며, 우리는 주님에게, 그리고 영원한 아버지와 가장 거룩하고 은혜로우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께 지금 그리고 영원히 영광을 드리나이다. 아멘.- 텔메소스의 욥 대주교/ 정교회Prayer for Peace 11You said to Your disciples,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to you; not as the world gives do I give to you.” We come before You in humility and ask that Your peace which surpasses all understanding will descend upon all people around the world, especially those currently in conflict and at war. Increase understanding and forgiveness between nations. Awaken the longing for a peaceful life in all those who are filled with hatred for their neighbor. Extinguish every dispute and banish all temptations to disagreement. Grant wisdom to civil authorities. Free those held captive, protect those in danger, and comfort those who are suffering and displaced. Implant in all of us reverence for You, and confirm us in love for one another. For You are the King of Peace and the Savior of our souls and to You we give glory together with Your eternal Father and Your most-holy, gracious and life-giving Spirit, now and ever and forever. Amen.- Archbishop Job of Telmessos/ Eastern Orthodox Archbishop of the Ecumenical Patriarchate
2020-03-30 16:40:20
화해·통일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4주) 평화를 위한 기도10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4주) 평화를 위한 기도10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68회 정기총회에서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할 것”(시 34:14)을 다짐하고,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 2020년을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실현하는 “희년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이 희년운동의 일환으로 세계교회협의회 (WCC)와 함께 3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반도평화를 위한 세계기도운동”을 전개하오니, 이번 주부터 매주 보내드리는 기도문 (혹은 신앙간증문)을 가지고 교회와 가정, 직장과 각 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 기도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 10: “청소년들이 평화와 통일의 일꾼이 되게 해 주세요” 하나님, 저희를 남과 북이 나누어진 한반도에 보내신 것은이 땅의 평화를 일구어가는 일꾼으로 부르신 거라고 생각합니다.학생인 저희 청소년들이 학업과 성장에 열심을 다하면서도 틈틈이 나라와 이 땅의 평화를 걱정하고 돌보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저희의 눈을 뜨게 하셔서 크신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보게 하시고,이 땅의 참 평화와 통일을 위해 마음을 쏟으며 살아가는 저희들이 되게 해주세요.다가올 통일 시대를 이끌어갈 우리 청소년들이 통일시대의 미래일꾼으로 자랄 수 있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부어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건강하게 이루어가는 어른이 되게 해주세요.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강슬기/ 연수여자고등학교 3학년 Prayer for Peace 10: “Prayer of Young People for Being God’s Instruments of Justice and Peace” God of peace,We confess that you have sent us to the Korean peninsula, where the North and the South were divided, to become a peacemaker.God of justice,Even though we are students who are faithful to study, help us to contribute to the peace process.Open our eyes to see the greater things in the Kingdom of God!Help us to devote ourselves to peace and reunification on the Korean Peninsula!God of mercy,Pour out your wisdom and power so that our young people may take the lead in the coming rea of reunification! Help us grow as your people who build the Kingdom of God on earth.May the young people be instruments of your heavenly peace!We pray in Jesus’ name, Amen! - Ms. Seulgi Kang/ Insu Girls’ High School, Incheon, South Korea
2020-03-24 10:28:30
화해·통일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4주) 평화를 위한 기도9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4주) 평화를 위한 기도9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68회 정기총회에서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할 것”(시 34:14)을 다짐하고,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 2020년을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실현하는 “희년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이 희년운동의 일환으로 세계교회협의회 (WCC)와 함께 3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반도평화를 위한 세계기도운동”을 전개하오니, 이번 주부터 매주 보내드리는 기도문 (혹은 신앙간증문)을 가지고 교회와 가정, 직장과 각 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 기도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 9: “북의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기도”생명과 평화의 하나님온전히 나를 내어 죽으신 십자가의 사랑과 헌신을 기억하며그리스도의 나눔과 베풂이 우리 삶에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이 땅 한반도에 발을 딛고 함께 살아가지만체제의 벽에 가로막혀서로의 아픔을 돌보지 못하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경제 제재와 자연 재해라는 이중고 속에서누구보다 어려움에 처해있는 북의 어린이와 여성들을 위로하시고우리의 마음과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북녘과 남녘의 어린이들이 맘껏 어깨동무하고여성들이 기쁨으로 손에 손잡으며생명평화세상을 힘있게 열어가게 하소서.우리에게 온전한 사랑으로 와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영수 회장/ 전국 YWCA 연맹 Prayer for Peace 9: “Prayer for Women and Children in North Korea”God of life,We give you thanks for your love that you have given yourself on the cross. May the love of Christ overflow our lives! Have mercy on us who are blocked by the walls of division and unable to care for each other’s pain.God of mercy,In the midst of economic sanctions and natural disasters, may you comfort the children and women who are doubly burden. May our hearts and hands reach them!God of peace,May the North and South Korean children walk shoulder to shoulder and women to join hands with joy. Help us to open up a world of life and peace.In the name of Jesus Christ, who came to us with perfect love, we pray. Amen!- Ms. Young Soo Han/President, Korea YWCA
2020-03-24 10:25:08
화해·통일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4주)  평화를 위한 기도8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4주) 평화를 위한 기도8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68회 정기총회에서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할 것”(시 34:14)을 다짐하고,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 2020년을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실현하는 “희년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이 희년운동의 일환으로 세계교회협의회 (WCC)와 함께 3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반도평화를 위한 세계기도운동”을 전개하오니, 이번 주부터 매주 보내드리는 기도문 (혹은 신앙간증문)을 가지고 교회와 가정, 직장과 각 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 기도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 8 은총의 하나님, 우리를 평화와 통일의 길로 이끄소서. 우리 민족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천년동안 하나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일제 감정기가 끝나면서, 외세에 의해 남과 북이 나뉘었습니다. 나뉘었을 뿐만 아니라, 냉전시대의 대리전 같은 비극적인 한국전쟁을 치렀습니다. 전쟁은 남과 북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 상처는 여전히 평화와 통일을 향한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여 주옵소서. 평화의 하나님, 70년 넘는 분단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크고 작은 평화의 몸짓이 있었습니다.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을 통해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통일의 기본원칙을 합의하였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작성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 6월에는 평양에서 감격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6.15 공동선언’이 이루어졌으며, 2007년 남북정상에 의한 ‘10.4 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018년 평창 올림픽 이후의 화해분위기에 힘입어 남과 북의 정상이 4.27 판문점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하던 평화의 길은 생각보다 험난하였습니다. 북미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평화의 출구를 찾는 듯 했으나 여전히 한반도는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구원의 하나님, 그동안의 모든 남북공동선언의 기조는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이었습니다. 이 땅을 살고 있는 주인인 우리가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변함없는 우리의 생각이고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의 분단이 외세에 의한 것이었듯이, 우리의 통일을 향한 길에도 외세의 장벽이 가로놓여 있음을 목격합니다. UN 제재의 틀 안에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우리 정부의 북한 개별관광시도가 간섭을 당하고, 남북 철도연결사업,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비군사적 비무장지대의 출입도 통제당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나님, 주변강대국들이 한반도 문제를 자국의 이익에서 바라보지 않게 하시고, 당사자인 남북의 평화와 공동번영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무엇보다 남과 북이 어떤 외세의 간섭에도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인내를 가지고, 평화와 통일을 향해 용기 있는 걸음을 내딛게 하옵소서. 이 땅의 교회들이 분단극복을 위한 평화의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분단의 상처를 인해 여전히 갈등하는 남남갈등의 깊은 골을 메우는 평화의 다리가 되게 하옵소서. 주여! 우리를 평화와 통일의 길로 이끄소서. - 육순종목사/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Prayer for Peace 8: “To End the Conflict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Gracious God,Lead us to peace and reunification! Our nation was once one country over thousand years during the Koryo and Joseon dynasties. However, foreign forces divided North and South Korea at the end of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Our nation is not just divided into two; but it went to war as if it displayed the pattern of the Cold War. The Korean War has deeply damaged both the North and the South, and we are not able to make progress towards peace and reunification because of the deep wounds. Lord, heal our deep wounds! God of peace, In the course of more than 70 years of division, there has been some efforts in the peace process. In 1972, we established the three principles of reunification, 1) independence, 2) peace, and 3) nation-wide unity in the 7.4 South and North Korea Joint Statement. In December 1991, we also signed the Agreement on Reconciliation, Nonaggression, and Exchanges and Cooperation. In June 2000, the historic inter-Korean summit was held in Pyongyang, and the “6.15 Joint Declaration” was made. In 2007, the “10.4 Inter-Korean Joint Declaration” was adopted. Eventually, due to the atmosphere of reconciliation after the 2018 Pyongchang Olympics, the leaders of North and South Korea adopted the 4.27 Panmunjom Declaration. Nevertheless, the path of peace that we expected was more difficult than we thought. Lord, have mercy on us! God of salvation,The foundation of all the South-North joint declarations has been the principle of national independence, which determines our own destiny. We still confess that we are the masters of this land and we have to work together for our self-reunification. Sadly, we see foreign forces on our path to reunification, just as the foreign powers divided our division. Within the framework of UN sanctions, the attempts of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South Korea) to break through the inter-Korean relations, including the inter-Korean railroad projects and inter-Korean exchange cooperation have been interfered by the foreign forces. God! Guide the neighbouring powers to seek the interests of the Korean people above their own interests instead! Above all, May the South and the North take courageous steps toward peace and reunification with deep trust and patience in each other in spite of any foreign interference. May the churches of Korea carry the cross of peace, becoming a bridge of peace that fills the deep gaps of the South-South conflict because of the wounds of division! Lord, lead us to peace and reunification! Amen! - Rev. Youg Soon Jong/ Moderator, The Presbyterian Church of the Republic of Korea
2020-03-24 10:16:50
화해·통일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3주) 평화를 위한 기도7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3주) 평화를 위한 기도7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68회 정기총회에서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할 것”(시 34:14)을 다짐하고,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 2020년을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실현하는 “희년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 이 희년운동의 일환으로 세계교회협의회 (WCC)와 함께 3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반도평화를 위한 세계기도운동”을 전개하오니, 이번 주부터 매주 보내드리는 기도문 (혹은 신앙간증문)을 가지고 교회와 가정, 직장과 각 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 기도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 7: “남북의 화해를 위하여” 자비로우신 주님, 남과 북이 전쟁의 재앙이 시작된 지 7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당신의 뜻과 상반된 분단을 경험하고 있음을 회개와 참회의 정신으로 고백합니다. 주님, 한반도 전쟁 종식을 바라는 죄 많은 종들의 소리를 들으사 분단된 이 땅이 다시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로 하여금 오직 평화와 화합만이 나라의 발전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적대감은 인류뿐 아니라 당신의 거룩한 뜻과 상반된 것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강대국의 마음을 감화하사 그들로 하여금 갈등을 종식시키고 그 어떤 지정학적 이익보다 한반도의 이익과 평화를 고려하게 하소서. 주님, 평화의 주님이 지혜와 빛을 허락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평화와 선의와 화합을 위해 함께 일할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 다음 세대에 통일된 한반도를 넘겨주어 그들이 전쟁의 두려움 없이 사랑과 평화의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도움이자 능력이신 주님, 성부와 성령과 더불어 지금부터 영원토록 당신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아멘! - 암브로시오스-아리스토텔리스 조그라포스 대주교/ 정교회 한국대교구장 Prayer for Peace 7: “To End the Conflict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 Most merciful Lord, we confess to You, in a spirit of repentance and contrition, that even though 7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beginning of the catastrophic for our Country civil war, we are still experiencing the drama of the division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something which is against your Holy Will. Lord, we ask you to forgive us and listen to the voices of your sinful servants praying for the end of the war on the Korean peninsula, so that our hearts and our countries may be once again united. Lord, help us to fully acknowledge that only peace and harmony can safeguard the progress of a nation. Hostility is contrary to the very nature of the human being and Your holy will. Lord, illumine the minds and hearts of the powerful of this world, so that they may assist in in bringing an end to this conflict and considering the interests of the Korean Nation above all other geopolitical interests. Lord, we beseech you, the Lord of Peace, grant us your wisdom and light so that we may all work together for peace, goodwill and harmony among us. Lord, make us worthy of handing over to the next generations a united Korean Peninsula, so that we may all live without the fear and agony of war, but with love, peace and security. Because, Lord, you are our help and our power, and to you we ascribe glory, together with the Father and the Holy Spirit, now and ever and to the ages of ages, Amen. Metropolitan Ambrose-Aristotle Zographos of the Korean Orthodox Church
2020-03-17 13:59:25
화해·통일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3주) 평화를 위한 기도6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3주) 평화를 위한 기도6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68회 정기총회에서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할 것”(시 34:14)을 다짐하고,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 2020년을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실현하는 “희년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 이 희년운동의 일환으로 세계교회협의회 (WCC)와 함께 3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반도평화를 위한 세계기도운동”을 전개하오니, 이번 주부터 매주 보내드리는 기도문 (혹은 신앙간증문)을 가지고 교회와 가정, 직장과 각 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 기도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월 3주 평화를 위한 기도 6 사랑의 하나님, 우리는 당신이 명령한대로 우리의 원수를 사랑할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평화협상보다 전쟁을 도모하는 데 익숙해 져 왔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역사의 주인의 당신에 대한 믿음을 잃었음을 고백합니다.. 70 년의 전쟁 후에도 한반도의 평화는 가능하다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공의와 평화를 증진하려는 우리의 간절한 노력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희망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열린 가슴과 마음으로 의심과 증오를 극복하도록 사랑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평화의 왕 되신 주님, 화해의 대리자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안에 있는 진리를 볼 수 있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한반도에, 그리고 곤경에 처한 모든 세상에도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 에릭 와인가드너/ 캐나다루터교회 Third Week of March Prayer for Peace 6 God of love, We confess that we have been unable to love our enemies, as you have commanded. We confess that we have been more efficient in waging war than in negotiating peace. We confess that we have lost our trust in your guidance as the Lord of history. Grant us faith that peace is possible on the Korean Peninsula even after 70 years of war. Grant us hope that our feeble efforts to promote peace with justice will bear abundant fruit. Grant us love that encourages us to overcome suspicion and hatred with open hearts and minds. Prince of Peace, help us to discover the truth in ourselves so that we can become agents of reconciliation; pour your mercy upon Korea, and likewise on the rest of this troubled world. Amen. Erich Weingartner/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Canada
2020-03-17 13:13:26
화해·통일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2주)  신앙 간증1 이산가족의 아픔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2주) 신앙 간증1 이산가족의 아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68회 정기총회에서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할 것”(시 34:14)을 다짐하고,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 2020년을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실현하는 “희년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 이 희년운동의 일환으로 세계교회협의회 (WCC)와 함께 3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반도평화를 위한 세계기도운동”을 전개하오니, 이번 주부터 매주 보내드리는 기도문 (혹은 신앙간증문)을 가지고 교회와 가정, 직장과 각 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 기도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월 2주 신앙 간증 1. 이산가족의 아픔 우리 국민 가운데 4분지 일이 이산가족입니다. 이 말은 아직도 남북의 수많은 백성들이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나 아버지 그리고 함께 한 밥상에서 밥을 먹고 한 이불을 덥고 자라났던 형제나 자매를 원수라고 부르도록 강요받는 비정상 사회에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많은 가정들이 남북분단으로 인한 아픔의 사연들을 갖고 있습니다만, 오늘 이 시간에는 유00집사님 가정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남북화해운동에 앞장서시는 것은 바로 집사님이 어렸을 때 겪은 비극적인 한 사건 때문입니다. 몇 년 전 한 잡지에 집사님의 인터뷰 내용이 실렸습니다. 일제시대 집사님의 부모는 조선 땅에서는 먹고 살기가 어려워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원자폭탄이 투여된 나가사키에서 살았는데, 폭탄이 떨어질 때 산에 굴을 파고 숨어 있어 다행히 피해는 입지 않았습니다. 그래 집사님은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광복을 맞이해 귀국선을 타고 조선 땅으로 돌아옵니다. 이후 둘째 누이는 남편의 고향인 남쪽 당진에서 살게 되고 나머지 가족은 아버지가 탄광에서 일하게 되어 북쪽 평양 사동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때 집사님은 13살이었습니다. 집사님의 회고입니다. “언제나처럼 대동강 옆 개천에서 동무들과 미역도 감고 놀고 있는데, 군복에 총을 메고 우리 쪽으로 군인들이 오는 거야. 국군 간호장교 대위인 여군 한명이 앞서고 남자 호위병 서넛이 카빈총을 들고 뒤따르고 무서웠지. 우리 쪽으로 와서 우리 어머니 집이 어디냐고 물어 보는거야. 자세히 보니 당진에 살던 둘째 누이야. 어이구 이 녀석 많이 컸네. 그러면서 껴안더라고, 반가웠지. 그리고 집에 함께 들어가는데 동네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몰려왔지. 그때 셋째 누이가 둘째 누이 들어오는 걸 봤대. 당시 인민군 간호장교 소좌였던 셋째 누이는 인민군과 함께 후퇴하지 못하고 집에 숨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 누이는 군의관 장교인 사귀는 남자의 영향으로 인민군 간호장교가 되었고 둘째 누이는 어릴 때부터 나이팅게일을 존경해 국군 간호장교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 엄마가 빨리 숨어라 해서 인민군 누이는 치마저고리를 입은 채로 장롱과 벽 사이 좁은 틈에 숨었지. 혹시라도 장롱 속이 보이지 않게 넷째 누이가 가로막고 있었지. 어머니 아버지는 딸이 오니까 반가우면서도 한편 불안한 거야. 서로 반가워하고 인사하고 있는 와중에 숨어 있던 인민군 누이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거야. 국군 누이를 핏줄보다 적으로 생각했나봐. 죽여 버리겠다고 외치면서 권총을 들고 국군 누이를 향해 겨눴어. 국군 누이는 멍하니 서 있고 뒤에 서 있던 호위병들이 인민군 누이를 향해 총을 겨누었지. 나는 누나들 다릴 붙잡고 엉엉 울었지. 금방 누구라도 죽을 것 같았으니까. 자식들은 울면서 바짓가랑이 잡고 말리고, 어머니는 왜들 그러냐고 통곡을 하면서 절대 방아쇠 당기지 마라. 니들 중 한명이라도 죽는 거 원치 않는다. 당장 총을 내려놓아라 말리셨는데, 그게 어머니 마음이고 우리 마음이었어. 동네 사람들 몇몇은 방에 들어와 있고 문 밖에서 보는 사람도 있고 방 안 상황이 험악했지. 이게 딱 우리 민족의 아픔이고 현실이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국군 누이가 호위병에게 총을 내려놓으라고 명령했다. 그럴 수 없다고 머뭇거리자 단호하게 재차 외쳤다. ‘당장 내려놓지 못하겠어’그제서야 호위병들이 총을 내려놓았고 인민군 누이도 총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부모님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군 누이에게 말했다. ‘오늘 이일은 없었던 걸로 하고 작은애를 도망하게 하자. 동네사람들도 다 못 본 거다.’국군 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인민군 누이는 치마저고리 차림 그대로 뒷간으로 난 쪽문을 박차고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것이 가족이 본 누이의 마지막 모습이었지.“ 그리고 1.4후퇴가 시작했고 국군 누이가 중공군이 몰려오니 내려가자고 했고 그때 같이 갔으면 안전하고 빠르게 피난할 수 있었지만 부모님들은 인민군 셋째 누이를 두고 갈 수가 없어 계속 버티고 버티다가 늦게 피난길에 올랐고 이때부터 이산가족이 된 것입니다. 그리곤 부산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전까지 부지런했던 아버님은 그때부터 허구한 날 술만 마셨고 어느 날 셋째 누이를 한 번만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곤 어머님은 메리야스 보따리 장사를 하시다 길에서 쓰러져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 또한 셋째 누이를 한번 보고 죽으면 원이 없겠다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런데 집사님께서는 이런 비극적인 가족사를 안고 있지만, 처음부터 통일운동에 앞장섰던 것은 아닙니다. 집사님은 자신이 변화된 경험을 이렇게 말합니다. “1989년 임수경이 텔레비전에 나오던 때야. 한참 통일바람이 불던 때였잖아. 그때 일하던 중에 우연히 TV를 보는데 임수경이가 ‘우리는 하나다’라고 부르짖고 어릴 때 뛰어놀던 대동강, 모란봉, 평양 시가지가 나오는데 셋째 누이 생각이 나면서 충격을 받았지. 그래서 연세대학교 집회에 한 번 가본거야. 거기서 문목사님이 앞에 나와서 열사들 이름을 하나씩 부를 때, 그 자리에서 회개를 했어. 난 그 전까지 데모하는 학생을 보면 폭도들이라고 했거든. 그날 정말 통곡을 했지. 김도향의 노래 있잖아.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내가 딱 그런 놈이었어.” -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 설교 중에서 * Story of Faith 1. Pain of the Separated Family About one quarter of Koreans have been separated from families since the Korean War. This means that many people of two Koreas still live in an abnormal society where they are forced to treat their parents, brothers, and sisters as enemies. Many families have some stories of the pains caused by the division, but today I want to talk about Mr. Yoo. Even though he is eighty-year-old, he is at the forefront of the inter-Korean reconciliation movement. A tragic incident of his childhood has led him to the path of reunification. A few years ago, indeed, his story was published in a magazine.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Mr. Yoo’s parents crossed over to Japan because they can hardly make ends meet in Chosun (Korea). They lived in Nagasaki, Japan where the U.S. detonated the atomic bombs along with Hiroshima, Japan, but fortunately, they burrowed and hid in a mountain when the bombs fell so they did not harm. He was born in Nagasaki, and he came to Chosun (Korea) on a return ship after Korea gained its independence after 36 years of occupation under the Japanese Colonial rule. One of his sisters lived in Dangjin, South Korea, with her husband, and the rest of our family lived in Sadong, Pyongyang, North Korea where his father worked in a coalmine company. Then the Korean War broke out. At that time, he was just 13 years old. He recalls the tragic incident that happened in his family, As always, when I was playing with my friends in a stream by the Daedong River, a group of soldiers carrying a gun approached us. A female captain of the Army Nursing Officer of South Korea followed by male guards came to us. We were very scared. She asked us where my mother’s home is in the town. Looking closely, I recognised that she is one of my sisters who has lived in Dangjin, South Korea. She said to me by hugging me: “You have grown so much.” I was very happy to see her. So we walked to home together, and neighbours in the town also came to our place as they were curious to see what will happen. Then one of sisters saw that my sister who was the Army Nursing Officer of South Korea stepped in the front yard of our home. At the time, she is the head of the nursing officer of North Korea. She was hiding herself in our place without retreating with the army of North Korea. My sister who is the head of the nursing officer of North Korea became a military nurse officer under the influence of a man who was a medical officer whereas my another sister who is the captain of the Army Nursing Officer of South Korea actually became a nurse in honour of Nightingale from her early age. My sister who is the head of the nursing officer of North Korea hid herself in a narrow gap between the dresser and the wall. My younger sister was blocking my sister who is the head of the nursing officer of North Korea. My parents were so happy to see my sister, but at the same time, they were very anxious. While they were greeted each other, my sister who is the head of the nursing officer of North Korea had a lump in her throat and jumped out of the closet. She regarded her sister, who the captain of the Army Nursing Officer of South Korea, as an enemy not a family member, grabbing her pistol and aimed at her sister. A guard standing behind my sister who is the captain of the Army Nursing Officer of South Korea also aimed the gun at the other sister. I grabbed both sisters’ legs and cried loudly. Anyone seemed to die soon. We were crying together, and my mother also cried and restrained the two sisters from pulling the triggers, saying that she doesn't want any one of my two sisters die. We tried to break up the fight, insisting to put down the guns right now. Some people were in the room and some people looked inside the door. A tense atmosphere reigned in the room. This is the pain and reality of our nation. I don’ know how long it continued in this strange condition. My sister who the captain of the Army Nursing Officer of South Korea ordered the guard to put down the gun. But he hesitated that he could not do it. My sister once again called out to put down the gun. Then, the guard put down the gun, and my sister who is the head of the nursing officer of North Korea also dropped the gun. My parents said to my sister who the captain of the Army Nursing Officer of South Korea: “Let us consider nothing happen today, and let her run away! Let us also consider this scene has not seen by anyone of our neighbours!” My sister who the captain of the Army Nursing Officer of South Korea nodded her head, and my sister who is the head of the nursing officer of North Korea kicked a small door backward and disappeared. That was the last look of my sister. During the 1.4 retreat, my sister who the captain of the Army Nursing Officer of South Korea asked my parents to evacuated to South Korea as the Chinese forces crossed the Yalu and entered the war. If we evacuated together at that time, we could evacuate safely and quickly, but our parents couldn't leave my sister in North Korea, so we continued to hold on to the evacuation route and then eventually became a separated family. My family evacuated to Busan, but my father, who had been a good man until then, drank every day and died, leaving one wish that he could die after seeing my sister the head of the nursing officer of North Korea. My mother died on the street while selling underwear in the market. Before she died, she also used to say that if she died after seeing my sister, then she would have no resentment. His family story is such a tragic history, but he was not interested in the activities of reunification until a moment of personal transformation. He described his experience of transformation in the following way: It was 1989 when Lim Soon-Kyung was on the TV when the atmosphere of unification raised up. While I was doing something, I accidentally watched the TV and was shocked by hearing her saying, “We are one country” and by seeing some nostalgic place my hometown, Daedonggang, Moranbong, and Pyongyang, where I was hanging out with my friends, and then my sister left in North Korea came to mind. I went to a rally held at the Yonsei University. There, when Pastor Moon Ik-Whan came in front and called the names of the activities one by one, and I repented at that very moment. I used to label and explicitly define those students as riots. But I was so touched and moved deeply. Do you know Kim Do-Hwang’s song, “I Lived Like a Fool”? This song exactly describes my life before I experienced the transformation. - From a sermon of Rev. Cho Hung Jung (Hyanglin Church)
2020-03-11 10:08:41
화해·통일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2주)  평화를 위한 기도5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2주) 평화를 위한 기도5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68회 정기총회에서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할 것”(시 34:14)을 다짐하고,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 2020년을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실현하는 “희년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 이 희년운동의 일환으로 세계교회협의회 (WCC)와 함께 3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반도평화를 위한 세계기도운동”을 전개하오니, 이번 주부터 매주 보내드리는 기도문 (혹은 신앙간증문)을 가지고 교회와 가정, 직장과 각 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 기도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월 2주 어느 무지렁이의 기도 - 이 홍 정 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생명과 평화의 하나님, 분단과 전쟁과 냉전의 상처를 간직한 채 절망의 벼랑 끝에 서 있는 이 땅의 무지렁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꿈 같이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공동의 평화를 설계하는 ‘희망제작소’가 되게 하옵소서 남과 북이 모든 대립과 갈등의 창과 방패를 내려놓고 서로를 향해 용서를 선언하므로 치유되고 화해된 한반도를 향해 어깨동무하게 하옵소서 힘을 사랑하는 주변 강대국들이 전쟁의 연습을 멈추고 한반도를 향한 탐욕과 경쟁의 마음을 비우므로 평화공존에 이르는 길을 함께 열어가게 하옵소서 이 땅에서 살아갈 미래의 일곱 세대들에게 분단의 갈등과 고통을 대물림 하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되풀이 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 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마음 속에 DMZ에서 펼쳐질 세계생태평화축제와 동북아시아 평화공동체의 비전이 넘쳐나게 하옵소서 구원과 해방의 하나님, 분단과 냉전의 질곡을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평화 세상을 꿈꾸는 이 땅의 무지렁이들의 기도를 들어주옵소서 이 땅의 교회들이 드리는 기도 속에 분단과 냉전으로 상처 입은 민족을 향한 사랑과 용서, 치유와 화해, 평화와 상생에의 갈망이 넘쳐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끝이 아니었듯이 분단이 하나님이 이끄는 우리 민족 역사의 끝이 아님을 믿게 하옵소서 제국의 압제 아래 고통 당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내려와 출애굽의 역사를 이끄신 하나님께서 분단의 굴레를 벗기시고 온전한 구원과 해방의 은총을 내려주옵소서 남과 북, 그리고 온 세계가 한반도에 평화의 봄을 경작하며 분단과 냉전을 넘어 구원과 해방의 역사를 이루는 판문점 평화프로세스의 새로운 출발선에 함께 서게 하여 주옵소서 Prayer of an Earthworm - Rev. Dr. Lee Hong-Jung (General Secretary of NCCK) * The word ‘earthworm’ is used in this poem as a collective image or metaphor of minjung, a deep resentment-ridden people. God of life and peace, For those storing up the wounds of division and war, Standing on the brink of despair, Please listen to their prayers, the prayers of the earthworms. As if in a dream, the inter-Korean and North Korea-US summits that have come, For laying the groundwork of the common peace of the Korean peninsula and Northeast Asia, Let them become the “Factory of Hope.” May South and North lay down all confrontation and the spears and shields of conflict! Declaring to each other a proclamation of forgiveness, and May the healed and reconciled Korean peninsula stand shoulder-to-shoulder! May the surrounding superpower nations, who love their power, cease the practice of war! And empty themselves of their greed and competition over the Korean peninsula, Let us open the path together toward peaceful coexistence. For the future seven generations that will live on this earth, May the foolishness of the suffering and the conflict of division, No longer continue to be repeated! In the hearts of the children and youth of this land, May we hold a world ecological peace festival in the DMZ! And may the vision of a North East Asian Common House be overflowing! God of salvation and liberation, Hear the prayers of the earthworms of this land, Who live with the shackles of division and cold war, Who dream of the peaceful world that God desires. In the prayers of the churches of this land, For the people of the nation wounded by division and cold war, May love and forgiveness, healing and reconciliation, peaceful co-existence overflow! As Jesus’ death on the cross Was not the end of God’s history of salvation. Let us believe that division will not be the end of God leading our nation’s history. Hearing the cries of the Hebrew slaves suffering under the oppression of the empire, O God, who came down to lead the history of the Exodus, Please remove the yoke of division and give us the grace of complete salvation and liberation. So that South, North and the world may cultivate a spring of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Beyond the division and the Cold War, to realize the history of salvation and liberation, Please stand alongside us at the new starting line.
2020-03-11 10:01:02
화해·통일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2주)  평화를 위한 기도4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2주) 평화를 위한 기도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68회 정기총회에서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할 것”(시 34:14)을 다짐하고,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 2020년을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실현하는 “희년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 이 희년운동의 일환으로 세계교회협의회 (WCC)와 함께 3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반도평화를 위한 세계기도운동”을 전개하오니, 이번 주부터 매주 보내드리는 기도문 (혹은 신앙간증문)을 가지고 교회와 가정, 직장과 각 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 기도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월 2주 평화를 위한 기도 4. 남과 북이 사이좋게 잘 살면 좋겠어요 하나님,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배우는데 남과 북의 친구들이 사이좋게 지낼 날은 언제쯤 오게 될까요? 요즘 어른들 얘기를 들어보면 북한에 가뭄이 심하대요. 어려울 때 바로바로 도와주면 좋을텐데 그럴 수 없나봐요. 하나님, 왜 도와주는 것을 다른 나라에게 허락받아야 하나요? 남과 북이 힘들고 배고플 때 언제든 서로 도와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게 해주세요. 남과 북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서 다 같이 잘 살면 참 좋겠어요. 그러니 하나님 우리의 기도를 꼬옥 들어주세요. 저희를 도와주실 거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최현웅 어린이 (강월초등학교) Prayer for Peace 4. For South and North Korea to live well together Gracious God, In school, we learn that we should get along well with our friends. When will the day come when the South and North Korean friends will get along well with each other? Merciful Lord, We are told by adults that the drought is severe in North Korea. It would be great if we could help whenever they need help, but we cannot help. Almighty God, Why do we need to get permission from some other country when we want to help each other? Please help South Korea and North Korea be the kind of good friends that, whenever it is difficult for either of us or whenever we are hungry, we can help each other. I pray that we Koreans in the South and the North learn to live well together in harmony. Lord, help us now! In Jesus’ name, we pray. Hyun Woong Choi/ Seoul Gangwol Elementary School, Seoul, South Korea
2020-03-11 09:55:10
화해·통일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1주)  평화를 위한 기도3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1주) 평화를 위한 기도3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68회 정기총회에서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할 것”(시 34:14)을 다짐하고,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 2020년을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실현하는 “희년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 이 희년운동의 일환으로 세계교회협의회 (WCC)와 함께 3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반도평화를 위한 세계기도운동”을 전개하오니, 이번 주부터 매주 보내드리는 기도문 (혹은 신앙간증문)을 가지고 교회와 가정, 직장과 각 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 기도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월 1주 평화를 위한 기도 3: “이산가족을 위하여” 주님, 우리 민족의 사상과 이념의 분단으로 인하여 6.25전쟁이 일어나고 남과 북이 분단되고 가족들이 헤어진 이산의 슬픔을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 왔습니다. 이제 70년이 되는 올해 그 슬픔으로 통곡하는 가족들과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사상과 이념의 분단으로 단절된 민족의 땅이 서로 오가는 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사람이 나누어 분단된 한반도가 자유로운 왕래를 하고 그리고 슬픔의 이산의 가족들이 희망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금년 한 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서로 화합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분단과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 주시고 이제 증오의 사슬에서 놓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희망으로 하나 되고 주님의 아름다운 땅으로 엮어져서 이 민족이 새 하늘과 새 땅의 희망으로 차오르게 하여 주시옵소서. 둘이 하나 되게 하시는 예수그리스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윤보환 감독/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First Week of March Prayer for Peace 3: “Division and Suffering of Separated Families” Lord, We have lived up to now with the sorrows of division and separated families because of the Korean War, which broke out due to the division of ideologies. Loving God, It has been 70 years since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we, the churches of Korea, call out for your mercy on the divided families. We pray that we may walk the path of reunification, breaking the chains of division. Gracious God, We ask you to make one this divided country and unify the divided families from North and South Korea that yearn to be together. Make us reconcile with one another on the way to peaceful reconciliation! Merciful God, Hear our long-cherished desire of the entire Korean nation to put an end to the history of disgraceful division and now set us free from the chains of hatred. May we be united with the full of hope of New Heaven and Earth! We pray this in the name of Jesus Christ who makes two into one. Amen! Bishop Youn Bo Hwan/ Acting President, the Korean Methodist Church Council of Bishops; Moderator, NCCK
2020-03-05 17:44:43
화해·통일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1주)  평화를 위한 기도2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1주) 평화를 위한 기도2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68회 정기총회에서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할 것”(시 34:14)을 다짐하고,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 2020년을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실현하는 “희년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 이 희년운동의 일환으로 세계교회협의회 (WCC)와 함께 3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반도평화를 위한 세계기도운동”을 전개하오니, 이번 주부터 매주 보내드리는 기도문 (혹은 신앙간증문)을 가지고 교회와 가정, 직장과 각 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 기도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월 1주 평화를 위한 기도 2: 생명의 하나님, 우리는 한반도의 북동쪽 끝 웅기부터 남쪽 제주도 서귀포까지 한반도에 있는 이들을 위해 주님 앞에서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이름을 다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지난 수세기 동안의 그들의 고통과 자유와 주권을 향한 갈망을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1950년 시작된 한국 전쟁, 그 때부터 결코 끝나지 않았던 그 전쟁 이후의 그들의 여정을 아십니다. 우리는 한반도에 사는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연대하여 서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와 정의를 위해서, 핵무기와 온갖 종류의 군사적 행동으로 인한 위협이 종식되기를 기도하며, 한반도 주민들의 자기결정권과 미래의 소망을 위해 기도합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한반도의 북동쪽 끝 웅기부터 남쪽 제주도 서귀포까지 한반도에 있는 이들을 위해 주님 앞에서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이름을 다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마주해야 했던 분단과 모든 불의로 인한 상처들을 아십니다. 가족들이 나누어져 서로의 기쁨과 고통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편견은 우리로 하여금 타인을 두려워하는 쓴 열매를 맺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한반도에 사는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연대하여 서 있습니다. 우리는 이 분단이 종식되기를, 서로를 다시 알아가며 서로 형제, 자매로 인식하게 되기를 기도하고, 화해와 치유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새로운 시작의 원천이 되시는 성령님, 우리는 한반도의 북동쪽 끝 웅기부터 남쪽 제주도 서귀포까지 한반도에 있는 이들을 위해 주님 앞에서 기도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이름을 다 아시고, 풍성한 생명과 회복된 관계를 갈망하는 그들을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군대의 주둔과 천연자원의 착취로 인한 세상의 고통을 아십니다. 우리는 한반도에 사는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연대하여 서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영혼의 치유 뿐 아니라 자연의 치유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서로를 위하여 또한 어머니인 대지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새로운 길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삼위의 하나님, 긍휼과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우리 기도를 들어주소서. 로즈마리 워너 주교, 세계감리교협의회(WMC) 제네바 총무 First Week of March Prayer for Peace 2 God of life, We bring before you the people in Korea, from Unggi in the Northeast to Seogwipo on Jeju Island in the South. You know them by name. You know of their suffering over centuries, their longing for freedom and for self-determination. You know their journey since 1950 when the war began – a war that did not end since then. We stand in solidarity with your peopl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we pray for peace and justice, for an end of the threats of nuclear weapons and all kinds of military actions, for the right of self-determination for the people in Korea and for a future of hope. Jesus, redeemer of the world, We bring before you the people in Korea, from Unggi in the Northeast to Seogwipo on Jeju Island in the South. You know them by name. You know of their hurts because of all the injustices and divisions they have been facing. Families divided, not knowing of one another’s joys and pains. Prejudices are bearing bitter fruits of fear of the others. We stand in solidarity with your peopl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pray for an end of this division, for ways to get to know one another and to recognize the brother, the sister, for reconciliation and for healing. Holy Spirit, source of new beginnings We bring before you the people in Korea, from Unggi in the Northeast to Seogwipo on Jeju Island in the South. You know them by name in their longing for life in abundance and in restored relationships. And you know of the suffering of the earth because of the military presence and the exploitation of natural resources. We stand in solidarity with your people on the Korean Peninsula and we pray for healing, not only of the souls, but also of the nature and for new ways of living in harmony with one another and with mother earth. Triune God, God of mercy, justice and peace, hear our prayer. Bishop Rosemarie Wenner, World Methodist Council, Geneva Secretary
2020-03-05 17:39:32
화해·통일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1주)  평화를 위한 기도1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3월 1주) 평화를 위한 기도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지난 68회 정기총회에서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할 것”(시 34:14)을 다짐하고, 한국전쟁 발발 70년을 맞는 올해 2020년을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협정을 실현하는 “희년의 해”로 선포하였습니다. 이 희년운동의 일환으로 세계교회협의회 (WCC)와 함께 3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반도평화를 위한 세계기도운동”을 전개하오니, 이번 주부터 매주 보내드리는 기도문 (혹은 신앙간증문)을 가지고 교회와 가정, 직장과 각 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 기도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월 1주 평화를 위한 기도 1 생명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 우리가 함께, 한반도 주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남과 북의 모든 이들을 위해, 청년과 노인, 여성과 남성, 힘 있는 이들과 힘 없는 이들, 강한 믿음을 가진 이들과 희망을 잃어버린 이들, 평화를 갈망하며 목마른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평화를 위해, 새로운 연대와 우정을 선물로 줄 지속 가능한 평화를 위해, 마음의 평화와 땅의 평화를 위해, 그래서 남과 북이 그리고 한반도주민들이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정의, 소망, 기쁨의 징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울라프 픽세 트베이트 목사/ 세계교회협의회(WCC) 총무 First Week of March Prayer for Peace 1 God of life, God of peace, God of justice! Together we pray for the people of Korea, in the north and in the south, for young and old, for women and men, for the powerful and the powerless, for those who have a strong faith and those who have lost hope, for all who thirst and long for peace, for a just peace, for a sustainable, lasting peace that can bring the gifts of renewed kinship and friendship, for a peace in the mind and peace in the land so that the peninsula and the people of Korea can be a sign of the justice, hope and joy of your eternal reign. God in your mercy! Rev. Dr Olav Fykse Tveit, General Secretary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2020-03-05 17:08:39
화해·통일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Light of Peace)에 동참해주세요!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Light of Peace)에 동참해주세요!
평화 통일과 전쟁 없는 한반도를 위한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Light of Peace) 캠페인에 동참해주시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0년 3월 1일, 첫 기도일 시작에 앞서 여러분의 관심과 주변의 참여 독려를 위해 SNS(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려주세요. 아래의 샘플 글과 이미지(카드)들을 마음껏 활용해 주시고, 여러분의 창작 이미지를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함께 기도하기로 결단하는 글에 아래 내용을 자유롭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sample 1] “한반도에 평화는 가능합니다! 한국전쟁 발발 70년, 나는 한국과 세계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평화 통일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기도합니다. 평화 통일과 전쟁 없는 한반도를 위해! 우리의 기도가 평화를 위한 빛이 되기를! We pray Peace now End the War Let our prayer be a #LightOfPeace!“ [sample 2] (여러분이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장소, 집이나 교회 또는 다른 장소의 사진을 글과 함께 올립니다.) 여기 [여러분이 기도하는 장소, 도시, 국가 이름]에서 나는 한반도 평화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합니다. 평화 통일과 전쟁 없는 한반도를 위해! 우리의 기도가 평화를 위한 빛이 되기를! We pray Peace now End the War Let our prayer be a #LightOfPeace!“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http://www.kncc.or.kr/newsView/knc202002120001)와 세계교회협의회(www.oikoumene.org/light-of-peace) 사이트를 방문해주시고, ‘2020 한반도 희년 세계교회 기도운동 캠페인’(Global prayer campaign for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Light of Peace)을 널리 알려주세요. ▣ 해쉬태그도 달아주는 센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National_Council_of_Churches_in_KOREA #세계교회협의회 #World_Council_of_Churches #2020한반도희년세계교회기도운동 #전쟁없는한반도 #한반도평화정착 #2020글로벌평화조약캠페인 #KoreaPeaceTreaty #70days_of_global_prayer_for_Korean_Peninsula #wepray #peacenow #endthewar #koreanpeninsula #lightofpeace #korea #worldcouncilofchurches #nationalcouncilofchurches #ncck #pray4peace #pray4korea
2020-02-20 14: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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