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의 시작은 그때였다. 2013년. 결혼 후 처음으로 제주도를 찾아가 체험낚시 배에 오른 것이 원인이다. 낚싯대를 잡아본 경험도 없던 그 시절. 제주도의 활어가 떼를 지어 다니는 물 위에 배를 올려주고 낚싯대를 내리면 놀라울 만큼 신기하게 물고 올라오는 생선들을 바라보며 낚시는 이렇게 쉽고 즐겁고 편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형 뽑기 기계에서 X축은 선장님이 옮겨줬고 나는 그저 Y축으로 낚시 바늘만 내렸다 올리면 됐다. 그 먹기 힘들다는 고등어회를 배 위에서 배탈이 날 만큼 먹으면서 바다는 마치 무료 자판기와 같아 보였다.
이렇게 철없고 황당한 생각은 2017년 가을 나를 좌절로 몰고 갔다. 후배 따라 강남, 아니 낚시를 하러 간 자리에서 삼분의 일은 낚싯줄을 메느라 삼분의 일은 바닥에 걸린 낚시 바늘 빼느라 나머지 삼분의 일은 ‘이곳이 포인트가 아닌가보다’라는 마음으로 이동하느라 시간을 모두 허비했다. 그 삼분의 일을 모두 합치면 하루 종일이었기 때문에 다리는 피곤하고 어깨도 아팠다. 출출한 배는 신박하게 끓이는 라면 자판기로 때웠다. 그곳은 한강이었다.
역시 자리가 문제인가보다. 한강과 제주도에서의 낚시 경험을 비교하니 다른 것은 장소 밖에 없어 보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낚시를 시작해야하나. 집 근처 재래시장 구석에 있는 허름한 낚시용품점에서 거금 10만원을 투자해 기본 채비를 갖췄다. 이른바 베스 낚시를 위한 ‘국민채비’. 유행에 민감한 우리나라에서 어지간한 상품들은 ‘국민’ 수식어를 붙인다.
그저 낚시를 위해 길을 떠나려니 무엇인가 아쉽고 어렵다. 또, 한강처럼 시간을 허비하면 어쩔 것인가 싶으면서도 그것이 낚시의 길인가 싶은 마음도 슬그머니 올라온다. 명색이 자동차 시승과 리뷰를 업으로 삼고 있는 만큼 허탕은 치지 않겠다는 작전으로 시승과 낚시를 묶었다. 낚시로 시승을 낚았다. 첫 조어가 괜찮다. 르노삼성의 QM6 디젤과 가솔린이 한 번에 낚였다.
시승행사에서 QM6 가솔린 모델은 이미 타봤지만 디젤 모델은 처음이다. 비교 대상이 되는 싼타페, 쏘렌토 따위의 디젤 SUV를 이미 타본 뒤라 더욱 궁금했다. 첫 시작은 QM6 디젤로. 서울을 출발해 우리의 중간 기착지인 서산의 어느 저수지로 향했다.
디젤 SUV는 우리나라에서 정석이다. SUV와 같은 큰 차는 기름을 많이 먹게 마련이고 그렇다면 디젤 엔진을 얹어 힘과 연비를 한꺼번에 노려야한다는 것이 이유다. 또, 국산차 브랜드가 주로 디젤 모델을 내놓고 판매했던 것이 실상 더 큰 이유기도 하다. 더 깊이 들어가자면 1톤트럭이나 승합차와 엔진을 공유하던 시절로 내려가는데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서 SUV는 디젤엔진이었다. 최근 폭스바겐 사태로 인해 디젤 엔진의 녹색 얼굴이 깨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여기도 더 깊이 들어가자면 가솔린 엔진이 연비도 개선되고 힘도 좋아진 것이 이유다. 터보차저와 같은 기술이 들어가면서 적극적인 다운사이징과 경량화를 이뤄낸 결과다. 시승차는 QM6 디젤 dCi 4WD 모델. 3000만원 초중반의 고급 옵션 모델이다. 2.0리터 디젤 엔진으로 복합기준 공인연비는 11.9km/l. CVT 변속기까지 사용하며 연비를 올렸지만 그다지 좋은 성적은 아니다.
시동을 켜고 고속도로를 달리니 느낌이 색다르다. 요즘에도 이런 차가 있었나? 디젤 엔진의 떨림이 손으로 느껴진다. 운전대와 기어봉에서 전달되는 진동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간 가솔린차를 주로 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 디젤차에서도 운전자가 직접 떨림을 느끼는 경우는 흔치 않다. 출시 이후 기회가 없다가 처음 타보는데 가솔린 모델과 확실하게 비교된다.
가속페달을 밟고 고속도로 주행을 시작하는데 달리는 재미는 없다. CVT 변속기의 특성처럼 그저 꾸준하게 달릴 뿐이다. 변속의 즐거움이나 치고 나가는 맛을 보려면 다른 차를 선택해야한다.
단점만 지적하는 것 같지만 사실 매력도 있다. 허전한 가속의 CVT 변속기는 오히려 부드럽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자동차의 메커니즘까지 꿰고 있는 마니아들을 제외하고 실제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차를 사서 큰 속 썩이는 일 없이 타려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무난함이 매우 매력적이다. 주행거리가 1330km에 불과한 새 차가 덜덜거리니 무엇인가 안타깝지만 어차피 디젤 차는 다 떨리게 마련이다.
손 떨리는 주행에 익숙해질 무렵 실내가 눈에 들어온다. 세로로 긴 디스플레이는 이제 르노삼성자동차의 특색 중 하나다. SM6에서 봤던 다소 어색했던 UI 디자인도 이제는 적응된다. 몇 가지 버튼은 밖으로 빼놨고 내비게이션까지 큰 화면으로 통합했다지만 기본 내비게이션의 직관성은 떨어진다. 평가기준이 내비게이션 회사를 인수해 자체 개발하는 현대, 기아자동차인 것을 고려하면 전 세계 어디서나 평균 이상의 품질이겠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
서산 IC로 빠져나와 어느 저수지로 들어갔다. 함께 간 일행이 평소 즐겨가는 낚시 포인트라며 설명한다. 가까운 곳에는 수풀이 자라있고 중앙에는 오리가 꽥꽥거리며 돌아다닌다. 한 눈에 딱 봐도 유튜브 낚시 동영상에서 보던 그런 분위기다. 그 손 맛 좋다던 베스를 낚기엔 최적이라는 설명에 기대를 하고 바늘을 끼우고 물고기처럼 생긴 가짜 미끼를 달았다. 한 목숨 건져 올리는데 고무미끼 따위를 사용하니 미안할 따름이지만 트렁크를 열고 간식을 챙기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SUV의 트렁크는 이럴 때 좋다. 긴 낚싯대도 다시 반으로 접지 않고 그대로 밀어 넣었다 뺀다. 트렁크는 기존 QM5처럼 크램쉘 타입이면 더 좋았겠지만 지금도 걸터앉는 데는 지장이 없다. (크램쉘 타입은 엉덩이 닿는 부분이 실내에 있던 격벽이라 옷에 아무것도 묻지 않는 장점이 있었다)
초짜 티내게 루어 낚시에 캠핑용 의자까지 챙겨온 것이 부끄럽다. 얼른 트렁크를 닫고 낚시를 시작했다.
역시 허탕.
낚시는 그리 쉬운 것이 아니며 인생도 비슷하다는 개똥철학까지 생각하게 한다. 함께한 일행 셋 가운데 너 댓 마리를 잡은 한 명과 그래도 꽤 큰 베스로 손 맛 제대로 본 한 명이 있었다. 나는 시간을 잡았다.
다음 목적지는 바다. 그래 바다다. 처음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등어를 쓱쓱 낚아 올렸던 바다. 서해안 바다 가운데 방파제 옆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으로 차를 향했다. 이제는 가솔린이다. QM6 가솔린은 비교적 최근에 나왔는데 주춤하던 QM6의 판매량을 견인하는 모델이다. 한 때 SUV는 디젤이라는 공식을 이제는 깰 때가 됐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QM6 가솔린이다.
2.0리터 GDe 가솔린 엔진과 CVT 변속기를 얹었다. 디젤 모델과 동일한 변속기, 차체를 사용한다. 가솔린 모델은 소음과 진동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조금 덜 하게 마련이지만 르노삼성자동차는 SM6 수준으로 소음과 진동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애초 QM6 가솔린 모델을 설계하면서도 소음과 진동을 위한 패드 등을 추가할 공간까지 넉넉하게 마련했다는 설명이다.
덕분에 QM6 가솔린의 상품성은 매우 뛰어나다. 물론 두바퀴 굴림밖에 없지만 복합기준 공인연비가 11.7km/l다. 4륜구동의 QM6 디젤이 11.9km/l, 2륜구동 디젤이 12.8km/l인 것을 고려하면 매우 뛰어난 숫자다. 가격도 동급 디젤 모델에 비해 200~300만 원 정도 저렴해 상품성이 좋다. 무엇보다 운전을 하면 부드럽고 느긋한 가속이 편안한 느낌을 준다.
QM6 가솔린은 앞서 이야기했던 ‘무난한 차’에 가장 부합하는 모델이다. 연비도, 주행성능도, 소음도 무난하다. 사실 소음은 무난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정숙하다. 중형 이상의 가솔린 세단과 비슷한 수준의 정숙성이다.
승차감은 무난하다. CVT 변속기의 맛이 그렇다. 디젤에서 느꼈던 운전대의 떨림이나 공회전에서 바닥부터 올라오던 진동은 거의 없다. 비록 순간연비지만 국도 고속주행을 이어가니 10km/l를 훌쩍 뛰어넘는다.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QM6는 애초에 디젤과 가솔린 모델을 모두 개발했다. 국내 판매용으로는 디젤을 먼저 내놨지만 유럽, 중국에서 판매할 용도로는 가솔린 모델도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소개한 가솔린 엔진 외에도 중국에는 구형이라고 부르는 MPI 엔진을 장착한 모델도 있다. 다양한 엔진을 넣는 고민을 한 만큼 가솔린 엔진이라도 어색함이 없다.
어찌됐건 국도를 달려 도착한 곳은 어둠이 내린 바닷가. 포인트에 도착하니 어둠 정도가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머리에 올릴 랜턴을 준비하지 못해 어깨에 어색하게 끼우고 채비를 갖춘다. 날씨도 춥고 낮에 한 마리도 낚지 못한 실력을 생각하니 얼른 접고 밥이나 먹어야겠단 생각이 든다.
어디로 던지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바다에 퐁당퐁당을 여러 차례 했다. 때마다 걸리는 것 없이 끌어올렸는데 무언가 이상하다. 살짝 묵직하다. 손맛이라긴 약한데 저항 없이 오는 것을 보니 아마도 바닥에 가라앉은 쓰레기가 아닐까. 아뿔싸. 우럭이다. 손바닥 보다 좀 더 큰 우럭이 딸려나왔다. 낚싯대를 사고 첫 성공이다. 불쌍한 놈. 어쩌다 이런 손에 걸렸을꼬. 오늘은 성공이다. 낚시와 시승 모두. 디젤의 떨림? 기억도 나지 않는다. QM6 좋다. 낚시도 좋다. 우럭은 맛이 좋다.
오토캐스트=이다일 기자 auto@autoca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