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시승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연일 영상을 웃도는 날씨 때문에 시승 코스의 눈이 다 녹아버린 것. 시작부터 순탄치 않다.
이날 시승의 주목적은 QM6의 사륜구동 시스템 체험이다. 윈터타이어까지 신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시승차를 갖고 도심과 고속도로만 달리긴 아쉬웠다. 시승에 동행한 르노삼성차 홍보담당자, 인스트럭터와 함께 머리를 맞댔다. 고민 끝에 ‘눈(雪)’을 찾아 계획에 없던 강원도 평창으로 떠났다.
QM6로 설산을 오르다니. 마치 도심을 활보하는 정장 차림의 회사원이 그 차림 그대로 등산하겠다는 얘기로 들렸다. 심지어 그 산에 눈까지 쌓였다니 상상만 해도 불편하고 발시리다(?). 이런 생각을 하게된 데는 QM6의 곱상한 얼굴 탓도 있다. SM6와 닮은 QM6는 우락부락하고 터프하다기보다 점잖고 우아하다. 여기에 SUV의 역동성을 더하기 위해 보닛 등을 비롯한 외관 곳곳을 부풀렸다.
도심 주차장에서 마주한 QM6는 꽤 듬직했다. QM6의 차체크기는 전장 4,675mm, 전폭 1,845mm, 전고 1,680mm, 휠베이스는 2,705mm다. 싼타페・쏘렌토보다 작고 투싼・스포티지보단 크다. 1열, 2열 공간은 모두 넉넉하다. 특히 2열은 성인 남성이 앉아도 머리공간과 무릎공간이 충분하다. 다만 2열 등받이가 고정형이라 아쉽다. 많은 소비자들이 단점으로 꼽는 부분이기도 하다.
• 꽉 막힌 도심과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다
오전 10시 반 서울 청담역 인근 카페에서 출발했다. 이날 시승한 차는 QM6 dCi 4WD 고급 옵션 모델이다. 2.0리터 직렬 4기통 엔진과 엑스트로닉 CVT가 맞물려 최고출력 177마력과 최대토크 38.7kg.m를 발휘한다. 일반 주행을 하기에 수치상으로 모자라지도 넘치치도 않는 수준이다. 가속과 브레이킹 모두 부드럽다. 덕분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을 매끄럽게 빠져나왔다. 스티어링휠 무게는 가벼우면서도 반응이 정확해 부담이 없다. 공회전 상황에서는 운전대와 시트에 약간의 진동이 전해진다.
출시된 지는 꽤 됐지만 센터페시아 중앙에 자리잡은 8.7인치의 길다란 세로형 디스플레이는 여전히 미래차에 탄 듯한 느낌을 준다. 평소 스마트폰으로 내비게이션을 자주 이용하기 때문에 세로형 화면이 불편하진 않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조작 직관성이다. 운전 중 자주 사용하는 온도조절, 열선시트 등의 기능은 아날로그 버튼으로 빠져 있지만, 이 외의 기능들은 손에 익기 전까지는 쉽게 사용하기 힘들다. 운전자에게 중요한 곳은 외관보다 실내다.
짧은 도심 구간을 지나 강원도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올랐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낡은 콘크리트 노면을 아스팔트로 바꿔서인지 고속도로 노면 상태가 매우 좋다. 여기에 부드러운 주행감각이 더해져 달리는 즐거움이 배가 됐다. 일반적인 디젤차처럼 초반에 치고 나가는 힘은 느껴지지 않지만 CVT 특유의 매끄러운 가속력이 인상적이다. 속도를 차근차근 꾸준히 붙여나간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김 빠진 콜라’같다고 표현하지만 무난하고 편안한 주행을 원하는 사람에겐 충분히 매력적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고속 주행 시 안정성이다. 체감 속도가 낮아 무심히 가속 페달을 밟고 가다보면 디지털 속도계의 숫자가 꽤 올라가 있다. 곡선 구간을 지나거나 추월할 때에도 옆으로 기우는 느낌없이 안정적이다. 윈터타이어(245/45/19R)를 낀 탓인지 노면 소음은 다소 컸다. 고속 주행 시 풍절음도 약간 들리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는 아니다.
• 강원도 평창 산길을 오르다
‘일반 도로 주행에서 느낀 부드러운 주행 감각이 산길을 만나면 어떨까?’ 궁금해졌다. 평창 휘닉스 파크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근처 눈길 코스에 들어섰다. 빽빽하게 늘어선 흰색 자작나무 사이로 펼쳐진 고갯길은 그야말로 겨울왕국이다. 예상보다 꽤 험한 길이었다. 다른 차량이 지나간 바퀴 자국 위로 눈이 한겹 더 쌓여 지나간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 있는 상태.
눈이 수북이 쌓인 길 앞에 다다라서 기어를 수동 1단으로 바꿨다. 이와 함께 본격적으로 4륜구동 시스템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QM6에 적용돼 있는 4륜구동 시스템은 닛산의 ALL MODE 4X4-i® 시스템이다. 세 가지 모드(2WD/AUTO/4WD LOCK)를 선택할 수 있으며 운전대 좌측 하단에 조절 버튼이 있다.
2WD 모드는 앞바퀴 굴림 형식으로 고정돼 움직이며, AUTO 모드는 노면 조건이나 속도에 따라 알아서 구동력을 배분한다. 4WD LOCK 모드는 구동력을 앞・뒤 50:50으로 고정해 눈길, 진흙길 등 노면 조건이 좋지 않은 구간에서 안정성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4WD LOCK 모드로 가다가 40km/h를 넘으면 자동으로 AUTO 모드로 전환된다.
시승하는 동안에는 오프로드 상황을 제외하곤 대부분 AUTO 모드에 두고 주행했다. 모드에 따라 달라지는 앞・뒤 구동력 배분 상황은 계기판 상에 나타난다.
초입에서는 AUTO 모드로 운전했다. 일반 도로를 주행할 땐 대부분 앞바퀴로 힘이 전해졌는데 오프로드 환경으로 바뀌자 뒷바퀴에 전해지는 힘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최대한 앞 차가 지나갔던 흔적을 밟아 나갔다. 바퀴 자국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살짝 들어 운전하자 동승자석에 앉아 있던 인스트럭터는 “오프로드 주행 시 평소 운전할 때보다 시트 포지션을 높이는 것도 괜찮다”며 “이런 상황에선 멀리 보고 가는 것보다 바로 앞을 보고 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본래 QM6의 시트 포지션이 높은 편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시트를 최대한 높였다. 시트 높이 조절 범위가 꽤 커서 끝까지 올리자 키가 160cm인데도 머리가 닿을 듯했다.
AUTO 모드로 얼마 못 가 길은 더욱 험해졌다. 4WD LOCK 모드로 전환해 앞・뒤 구동력을 50:50으로 고정했다. 이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아 일정한 속력을 유지하며 나아갔다. 정차했다가 다시 가속 페달을 밟을 때 미끄러지는 느낌이 조금씩 들긴 했지만 QM6의 험로를 주파하는 능력은 생각보다 놀라웠다. 곳곳에 떨어진 크고 작은 바위와 비포장도로, 그 위에 쌓인 눈을 묵묵히 헤쳐 나갔다.
길의 중간쯤 들어서자 일부 구간에서는 눈에 덮인 것이 바위인지 구덩이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눈이 깊어졌다. 바퀴가 헛도는 구간도 생기기 시작했다. 점점 불안해졌다.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잠시 차에서 내렸다. 길 가장자리에 서자 눈이 정강이 절반까지 찬다. 왔던 길을 잠시 돌아보니 기도 찬다. 여기까지 QM6를 타고 올라왔다니.
아니나 다를까 문제가 생겼다. 눈에 덮여 구덩이인 줄 몰랐던 곳에 오른쪽 앞바퀴가 빠져 헛돌기 시작했다. 심지어 차량 바로 뒷 쪽에는 범퍼 높이의 바위가 바닥에 깊숙이 박힌 채 버티고 있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닥치자 모두가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이제 어떻게 하죠?”
사륜구동이긴 하지만 구동력을 앞뒤로만 나눠가질 뿐 좌우로는 배분이 안 돼 깊은 구덩이에서 탈출하기란 쉽지 않았다. 빠져 나가야 할 바퀴는 헛돌 뿐이었다. 결국 견인차를 부르기로 했다. 차 안에 들어와 히터와 열선시트를 켜 놓고 견인차를 기다렸다. 한 시간 가량 흘렀을까. 마음을 비우니 음악 감상할 여유가 생겼다. 마침 차 안에 흘러나오는 노래가 ‘Time to say goodbye’다. 현재 상황과 딱 맞는 선곡이 아니냐며 또 한 번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 순간과 작별을 고할 시간이다. 멀리서 견인차가 나타났다.
견인차 덕분에 구덩이에서 안전하게 빠져나왔다.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 차의 4륜구동 시스템이 추구하는 방향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본다. 최근 르노삼성차 광고에 배우 이병헌이 등장해 눈이 내린 아침 “안전하게 가기로 했다”며 QM6 4WD를 타고 눈길을 달린다. 이 때 이병헌이 달렸던 길은 돌과 흙이 가득하고 눈이 많이 쌓인 험로가 아니다. 그렇다. QM6의 4WD시스템은 일상용이다. 무리하지 않는 수준의 주행에서는 충분히 유용하다.
르노삼성차는 QM6의 4WD 시스템을 국내 동급 경쟁 모델 대비 40만원 가량 저렴한 170만 원에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같은 정책은 4WD의 대중화를 위한 것으로 실제 QM6 디젤 모델 중 4WD 장착 비율은 50%이 장착하고 있다고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밝혔다. ‘대중화’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눈길에서 사륜구동이 만능은 아닐 뿐더러 일상적인 용도의 사륜구동에 무언가를 잔뜩 기대했다간 실망하기 십상이다. 일상에서 친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수준. 딱 그만큼이다.
오토캐스트=이다정 기자 dajeong@autoca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