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이 내놓은 르노의 자동차 클리오를 시승했다. 강릉의 경포대 인근 호텔에서 정동진을 돌아오는 왕복 80km의 코스에서다. 르노삼성이 수입하고 판매하지만 SM, QM과 같은 이름을 쓰지 않았고 앰블럼도 르노의 그것이 붙었다. ‘유럽에서 온 차’를 강조하겠다는 의지다. 이번 달 사전계약을 시작한 이후 1000대 가량 계약을 기록했으며 14일부터는 고객 인도를 시작했다. 국내에서 선풍적인 소형 SUV 인기를 보여줬던 르노삼성의 전작 QM3와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는 차. 소형차 클리오로 동해 바닷길을 달렸다.
시승코스는 연비위주다. 그다지 막히지 않는 강릉 시내를 빠져나오면 정동진으로 향하는 국도와 고속도로를 번갈아 이용한다. 고속도로로 곧바로 달리면 약 30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1시간 10분 정도로 늘렸다. 정체가 없는 길에서 달리니 1.5리터 디젤 엔진과 게트락의 듀얼클러치 변속기가 아주 효과적이다. 정차시 엔진을 멈추는 장치도 들어있지만 그다지 정차할 일이 없어서 몇 차례 사용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서 측정한 연비는 18.5km/l. 중간에 공터에서 원을 따라 뱅뱅 돌며 회전 능력도 측정했고 가속을 하며 거칠게 달리는 승차감도 확인했는데 도착지에서 뚜껑을 열어보니 깜짝 놀랄 연비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인증받은 고속도로 연비 18.9km/l에 비하면 조금 낮지만 복합연비 17.7km/l에 비해서는 높은 수치다.
클리오는 길이 2590mm의 소형차다. B세그먼트라고 부르며 유럽에서는 폭스바겐의 폴로, 포드 피에스타와 경쟁하는 차다. 엄밀히 말하자면 국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폭스바겐의 골프보다 조금 더 작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이 차를 소개하며 경쟁 모델로 은근슬쩍 MINI의 컨트리맨과 푸조의 208을 보여줬다. 이니셜로 처리하긴 했지만 국내 시장을 고려한 의도가 엿보인다. 두 차에 비교하자면 길이와 폭은 좀 더 길고 높이는 낮다. 전형적인 최근 차의 디자인 요소를 담았다. 르노의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한 첫 번째 모델이기도 하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이 차가 유럽의 베스트셀러임을 강조했다. 마케팅 담당 방실 이사는 “유럽에서 동급 차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차”라고 클리오를 소개했다. 그리고 그 차를 터키에서 생산해 한국으로 바로 가져오는 만큼 르노의 소형차에 대한 노하우가 그대로 담겨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해치백이 인기 없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2018년에는 B세그먼트 가운데 해치백의 판매량이 SUV의 판매량을 넘어섰다는 도표도 보여줬다. 그동안 SUV의 성공에 붙여 클리오까지 성공적인 안착을 할 지 궁금증이 생긴다.
클리오를 시승한 뒤 확인한 포인트는 두 가지다. 디자인과 재미. 그다지 화려하지 않지만 작은 차에 세련된 디자인을 넣었다. 르노의 패밀리룩을 적용했는데 QM3 보다 조금 더 정제됐다. 간결한 선으로 이어지지만 C필러까지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헤드라이트는 LED를 사용했고 사이드미러를 문짝에 붙여서 시야 확보에 힘썼다. 덕분에 좌우 시야는 넓어졌고 좁은 차의 느낌을 많이 상쇄할 수 있었다. 흰색, 검정은 물론 와인빛의 레드와 바다처럼 푸른 색은 차의 캐릭터에 비해서 조금 차분한 느낌이지만 튀는 색상과 판매량 사이에서 적당한 타협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내 디자인도 간결하다. 스티어링휠과 계기반, 인포테인먼트와 공조 다이얼은 꼭 필요한 것들만 눈에 보인다. 특이한 두 가지 기능은 열선시트와 시트 등받이 각도 조절. 열선 버튼은 문짝 방향 시트 아래에 버튼을 숨겨두었고 등받이는 옛날의 폭스바겐 골프처럼 동그란 다이얼을 돌려야한다. 뒷좌석도 좁지 않다. 앞좌석 의자의 등받이를 파서 무릎 공간을 확보했고 머리 공간도 확보했다. B세그먼트 가운데 가장 넓은 공간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물론 동급의 SUV에 비해서는 조금 좁다. 정확히는 좁다기 보다는 낮다. QM3와 비교하자면 천정 높이가 조금 낮은 편이며 그에 따른 트렁크 공간의 차이 정도가 눈에 띈다.
시동을 걸면 1.5리터 디젤 엔진이 확실한 존재감을 나타낸다. 다만, 디젤 엔진의 소리는 낮은 음으로 울리지 않고 고속으로 갈 수록 부드럽다. 진동 역시 정차시 가장 크고 달리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사라진다. 동급의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과 비교하자면 낮은 주파수의 진동이 적다. 웅웅거리는 느낌도 없다. 적당한 정도의 디젤 엔진 소리가 난다. 3000rpm을 넘어서면 디젤의 한계와도 같은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긴 하지만 이내 변속이 시작되니 평소 그다지 느낄 순간은 없겠다.
가속페달을 밟고 달리기 시작하면 QM3에 비해 경쾌한 달리기가 시작된다. 같은 파워트레인을 가졌지만 작고 가벼우니 당연한 결과다. 실용 영역에서의 가벼운 달리기는 이 차를 타는 내내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느낌을 준다. 가다서다가 많은 국내 도로와 어울리는 구성이고 고성능을 자랑하거나 엄청난 효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닌 실제로 도로를 달릴 때 느낄 수 있는 효휼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차의 파워트레인은 QM3에서 검증한 것이니 크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보다 더 잘 달리고 재미있다.
전반적인 승차감은 부드럽다. 최근 국산차들이 단단함을 추구하는 가운데 노선을 달리한 차가 등장한 셈이다. 노면과 맞닿는 느낌까지 단단하게 유지하는 최근의 국산차와 달리 자잘한 노면 충격은 서스펜션과 시트가 흡수해버린다. 결국 승차감으로 이어지는 이 효과는 ‘의외로 편안하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서스펜션은 뒤에 토션빔 타입을 사용했는데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에도 큰 스트레스가 없다. 현대자동차의 코나와 비교해도 더 부드럽고 말끔하게 지나간다. 오히려 이 차가 과속방지턱이 많은 국내 상황에 더 적합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급격한 코너에서는 차체자세제어장치(ESP)가 작동하며 잡아준다. 시승 중간에 공터에서 지름 약 7미터 정도의 원을 따라 계속 속도를 높여봤는데 35km/h에서 타이어가 울기 시작하더니 40~45km/h 정도 까지는 자리를 지킨다. 노면 접지력이 생각보다 좋다. 17인치 45시리즈 타이어의 힘도 있을 것이고 한계의 순간에서도 부드럽게 잡아주는 세팅의 힘일 수도 있다.
시승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동안 관심 밖이던 소형차가 이렇게 많은 변화를 가졌을지 몰랐다. 사실은 소형차라고 하면 국산차를 생각하며 그 캐릭터만 생각했는데 르노에서 만든 차를 그대로 가져오니 완전히 다른 느낌의 차가 등장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양성이 좋다. 국산 소형차와 비교하자면 좀 더 부드럽고 가볍게 달리고 소음과 진동이 작다.
다만, 이 차의 가장 큰 약점은 시간이다. 2015년 글로벌 출시한 차를 2018년에 국내에 출시했다. 마치 폭스바겐이 티구안을 이런 저런 이유로 이제서야 신차로 출시한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 차는 요즘 무조건 잘 팔린다는 SUV아닌가. 소형차 그리고 해치백인 이 차를 그리고 몇 년 안에 신차가 나온다는 이 차를 왜 사야하는가에 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다. 굳이 말하자면 좀 더 다른 디자인의 차를 원한다면 그리고 국산차의 천편일률적인 승차감과 엔진이 싫다면 그래서 실망했다면 대안으로 추천할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