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小確幸).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을 의미한다. 최근 2030세대를 중심으로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으로 표현했다. 잘 와닿지 않는다면 퇴근 후 샤워를 마치고 TV 앞에서 치킨을 뜯는 기분을 떠올리면 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차를 만났다. 볼보자동차의 막내 SUV ‘XC40’을 시승했다. 시승 구간은 남양주와 춘천, 서울을 오가는 236km의 장거리 코스다. 2인 1조로 한 명씩 돌아가며 모멘텀과 R-디자인 모델의 운전대를 잡았다. 장거리 시승을 하면서 느낀 점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주제가 확실한 차라는 것. 이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이 차의 실내다. 운전자가 운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실내 공간을 쓰임새 좋게 만들었다.
XC40의 실내는 형님 뻘인 ‘XC60’이나 ‘XC90’에서 볼 수 있는 레이아웃과 비슷하지만 소재나 디자인 등이 좀 더 단순하면서도 공간이 자잘하게 나뉜 것이 큰 차이다. XC40에는 운전자가 손을 뻗는 자리에 다양한 수납 공간이 마련돼 있다. 특히 카드 수납함, 휴지통, 가방 걸이 등 별 것 아니어서 따로 자리를 마련하기 애매한 것들이 XC40에는 떡하니 자기 자리를 잡고 있다. 실생활에서 차를 타며 당연한 듯 감수하고 있던 불편 요소들을 깨알같이 해소시켜주는 포인트들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차를 타고 이동할 때마다 노트북과 카메라, 지갑, 파우치 등을 챙기다보니 늘 짐이 많은 편이다. 이 때 꼭 필요한 소지품이 담긴 가방은 동승자석이나 2열 좌석에 던져 두는 경우가 많다. 늘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여성 운전자들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이다. 어느 곳에 가방을 놓든 급정거, 급가속을 하거나 급커브 구간에 들어서면 시트에 놓여있던 가방이 그대로 미끄러져 바닥에 툭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 가방 걸이는 중요한 방책이 된다.
XC40의 수납 공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센터 콘솔에는 무선 충전 공간이 있다. 스티어링 휠 왼쪽에는 카드 홀더를 별도로 마련했다. 컵홀 더 뒤에는 갑티슈를 보관할 만한 크기의 공간과 휴지통을 함께 마련했다. 앞좌석 시트 밑에 역시 수납 공간을 확보하고 글로브 박스 도어에는 접이식 고리를 설치해 가방이나 쇼핑백 등을 걸어 놓을 수 있도록 했다. 도어에 위치한 우퍼 스피커는 실내공간 바깥쪽 엔진룸 사이로 옮겼고 그 자리에 13인치 노트북을 수납할 만한 크기의 공간을 마련했다. 뒷좌석 역시 시트 양쪽에 조그만한 두 칸으로 나눠져 있는 수납공간과 함께 넓은 도어 포켓이 있다.
실내를 구성하는 소재는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XC60이나 XC90에서 봤던 고급스러운 가죽과 우드 패널을 기대했다간 당황할 수 있다. 이날 시승한 R-디자인 트림에는 오렌지색의 펠트(털이나 수모섬유를 수분과 열을 주면서 두드리거나 비비거나 하는 공정을 거쳐 시트모양으로 압축된 원단)를 도어 트림, 바닥 등 곳곳에 사용했다. 100%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라 친환경적이라는 점은 좋지만, 살에 닿았을 때 느껴지는 꺼끌꺼끌함은 다소 낯설다.
2열의 레그룸과 헤드룸은 모두 넉넉하다. 동급 차량 중 가장 긴 휠베이스(2,702mm)와 상대적으로 높은 전고 덕분이다. XC40의 차체크기는 4,425mm(전장)X1,640mm(전고)X1,875mm(전폭)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2열석에 앉았을 때의 느낌이다. 넓고 개방감이 좋으면서도 다른 SUV들과는 조금 다른 공간감이 느껴진다. 높은 전고와 더불어 작은 2열 유리와 매우 큰 쿼터 글라스 때문에 박스카에 앉은 듯하다. 다만 등받이 각도가 다른 차량에 비해 직각에 가깝게 세워져 있어 다소 불편하다.
직렬 4기통 싱글터보 가솔린 엔진과 8단 자동 변속기를 탑재하고 최고출력 190마력(4,700rpm) 최대토크 30.6kg.m(1,400~4,000rpm)을 발휘하는 XC40은 부드럽고 가뿐한 주행이 특징이다. 디젤 차량 만큼의 펀치력은 없지만 일상 주행에서 충분히 만족할 만한 부드러운 가속력과 고속 안정성이 인상적이다. 고속에서 재가속을 할 때 반응은 다소 굼뜨지만 도심형 SUV인 것을 고려하면 용인할 만한 수준이다. 스포츠 섀시가 들어간 R-디자인 모델로는 조금 더 스포티하고 묵직한 주행감을 느낄 수 있다.
엔트리 트림에서도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 파일럿 어시스트 등 볼보의 안전 및 주행 보조 시스템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XC40의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시승 행사 앞서 발표를 맡은 이현기 볼보자동차코리아 세일즈트레이닝매니저는 “볼보자동차는 트림별로 옵션의 차이를 크게 두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안전 사양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XC40은 모멘텀과 R-디자인, 인스크립션 3가지 트림으로 판매되는데 이들 모델은 실내외 디자인이나 편의 사양 등에 차이를 둘 뿐 안전 사양은 모두 똑같이 들어간다.
꼬박 하루를 함께한 XC40은 주행 성능이 튀거나 인상적이진 않았다. 도심에서 느긋하게 달리기에 더욱 어울리는 차량이었다. 그럼에도 개성있는 수납 공간, 넉넉한 안전 사양 등 작지만 섬세한 요소들로 소확행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차였다.
오토캐스트=이다정 기자 dajeong@autoca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