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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가는 길엔 버스와 RER을 이용하기로 한다. 먼저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걸었다. 마음만 먹으면 RER 역까지 바로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춥고 바람 부는 날씨에 0.1초 만에 걸어갈 마음을 거둔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역으로 향하는 126번 버스가 왔다. 전 날 지하철에서 미리 구입한 1회권 티켓을 사용했다. 버스에 이번 정류장과 다음 정류장을 알려주는 안내 방송은 없다. 정류장명이 흐르는 기다란 전광판을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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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대중교통은 촘촘하게 연결돼 있어 편리하지만, 이용객들에게 친절한 편은 아니다. 버스 뿐만 아니라 지하철에도 안내 방송이 없는 곳이 대다수다. 버스에 탄 지 5분이 채 안 돼 내려야 할 역의 이름이 전광판에 흐른다. 버스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서둘러 내린다. 짧게 둘러 봤지만 이날 탄 버스는 파리에서 탄 대중 교통 중 가장 깔끔하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로 건너편에 RER 타는 곳이 보인다. RER은 파리 중심지에서 살짝 벗어난 곳을 연결하는 교외 전철이다. 그래서 파리 시내 지하철 티켓으로는 탈 수 없다. 혹시 환승이 가능한가 싶어서 방금 내린 버스에서 사용한 티켓을 개찰구에서 그대로 넣었다. 빨간색 ‘X’표시와 함께 다시 내뱉는다. 안내 창구로 향했다.
“파리로 가요?” 역무원이 묻는다. ‘여기가 파리인데 왜 파리로 가냐고 묻는거지?’ 아차 싶어 다시 생각해보니 여긴 파리 시내를 살짝 벗어난 교외다. RER을 탈 수 있는 표를 다시 산다. 개찰구를 통과해 RER을 타러 간다. 여러 갈래로 나뉜 길에 혼란스럽지만 RER에 올라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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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싸한 기분이 든다. 구글맵을 켜고 현재 위치를 확인한다.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다. 목적지의 반대 방향이다. 더 멀어지기 전에 서둘러 내린다. 내려보니 어쩐지 익숙하다. 2년 전 출장으로 왔던 파리모터쇼가 열리는 베르사이유 박람회장이다. ‘곧 있을 모터쇼장에 이렇게 오면 되겠구나’ 답사한 셈 친다.
내린 곳에서 시트로엥 공원까지는 걸어서 20분. 버스 대신 걷기로 한다. 엉뚱한 방향으로 가다가 내렸는데도 걸어서 20분이면 갈 수 있다니. 파리가 큰 도시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긴장이 풀어지고 목적지에 거의 다 와가니 춥고 배고파진다. 파리는 대부분의 식당이 오후 2시 반부터 브레이크 타임이다. 브레이크 타임에 딱 걸린 시간이라 문 열린 곳 아무 데나 들어간다. 파니니와 샌드위치를 파는 곳이다.
공원 출발 전 구글맵이 알려준 소요 시간은 30분. 이와 상관없이 1시간 30분 만에 시트로엥 공원에 도착했다. 바람 불고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날씨지만 공원은 평화롭다. 1915년에 지어진 시트로엥 자동차 공장을 1970년대 외곽으로 옮긴 후 그 자리에 도시 재정비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원이다. 1980년대 파리에서 진행한 최대 토목 사업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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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중심부로 향했다. 단순히 시트로엥의 공장이 있던 곳이라서 창립자의 이름을 붙인걸까?, 왜 시트로엥 공원이지? 의문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공원을 둘러보니 조금 알 수도 있을 것 같다. 공원을 둘러보니 창의력이 샘솟는 기분이다. 한 군데도 소홀한 공간이 없다. 공원은 너른 직사각형 잔디 광장을 중심으로 분수와 두 개의 유리 온실, 서로 다른 식물을 심어 놓은 정원들로 둘러 싸여있다. 정원은 구획마다 개성이 넘친다. 네모나게 똑똑 잘라 놓은 나무와 대각선으로 비딱하게 심어져 있는 나무, 동그란 공 모양으로 다듬은 풀까지. 시트로엥의 창립자 앙드레 시트로엥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비로소 느낄 수 있다.
실제로 앙드레 시트로엥은 모험가 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스티어링 휠이 알아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능 등 초기 유럽 자동차에 혁신적인 기술을 대거 도입했다. 또 독특하고 톡톡 튀는 광고 마케팅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르노나 푸조보다 비교적 늦게 산업에 발을 들인 시트로엥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1925년부터 1934년까지 에펠탑에 시트로엥 글자를 수십만 개 조명으로 수놓았다. 누구라도 멀리서 시트로엥이라는 글자를 볼 수 있도록. 이 밖에도 자동차의 내구성을 보여주겠다며 사하라 사막을 횡단했고, 코끼리를 차 위에 얹어 파리 시내를 주행하기도 했다.
파리=이다정 기자 dajeong@autoca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