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일요일, 파리에 살고 있는 한 시민을 인터뷰하기로 한 날이다. 주말 인파를 피하기 위해 비교적 한적한 곳으로 약속 장소를 정했다. 지하철이나 버스로는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마침 렌트카도 있어 이를 이용할 참이었다. 인터뷰 당일 오전, 인터뷰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늘 파리 시내 전체가 ‘차 없는 날’이래요.” 차는 이용할 수 없으니 가까운 파리 시내로 장소를 옮겼다.
파리시는 대기 오염과 소음 공해를 줄이기 위해 1년에 한 번 씩 도시 내 차량 진입을 통제하고 있다. 올해로 4년째다. ‘차 없는 날’은 전 세계 47개국 2000여 개 도시가 참여하고 있는 이미 널리 알려진 캠페인이다. 1년에 한 번이라도 자동차를 타지 말자는 운동이다. 365일 중 하루 자동차를 안 탄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냐만은 상징하는 바는 꽤 크다.
‘차 없는 날’은 1973년 1차 석유파동 이후 시작됐지만, 1994년이 되어서야 이 프로젝트에 대한 얼개가 잡혔다.1995년에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Reykjavík), 영국 바스(Bath), 프랑스 라로쉐(La Rochelle)가 ‘세계 자동차 없는 날’ 컨소시엄을 조직한 이후 퍼지기 시작했다. 1997년 영국의 환경운송협회가 차 없는 날 캠페인을 시행하고 이듬해 프랑스 라로쉐에서 시작해 프랑스 전역에 퍼졌다.
파리 도심 도로에 차가 나오지 못한 날, 서울시 역시 ‘차 없는 날’이었다. 서울시의 차 없는 날은 한 번 본 적이 있다. 보통 일부 구간만 통제하기 때문에 길거리에 차가 없다는 사실이 크게 와 닿진 않는다. 파리는 조금 다르다. 도시 전체에 차량 진입을 통제한다. 물론 버스나 택시, 경찰차 등은 도로에 나올 수 있다. 다만 30km/h로 속도 제한이 있다. 파리 외곽 지역 일부도 차량 진입 통제 구간에서 제외다.
인터뷰를 하러 가는 길, 도로에 차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도로 변 주차장에는 차가 꽉 들어차 있지만 움직이는 차는 그렇게 많지 않다. 전 날인 토요일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개선문으로 이어지는 왕복 6차선 도로는 차 대신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차 대신 자전거를 선택한 사람들 때문인지 공유 자전거 자리도 텅텅 빈 곳이 많다.
하지만 파리 도시 전체에 완벽하게 차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도심으로 향할수록 교통량이 꽤 많아진다. 버스나 택시 등은 운행을 계속할 뿐만 아니라 차 없는 날인 줄 모르고 차를 갖고 도로에 나온 사람들도 눈에 심심치 않게 보인다.
파리에서 교통량이 많은 곳 중 하나인 오페라 역 쪽으로 향한다. 도심에 차량이 진입하는 구간에는 파리 시청 직원들이 형광색 조끼를 입고 차를 통제하고 있다. 바리케이드를 세워 놓고 ‘진입할 수 있는 차’와 ‘없는 차’를 가르고 있다. 바리케이드에 막힌 차량은 직원들의 지시에 따라 들어오기도, 돌아가기도 한다. 그 건너편에서는 경찰들이 서서 이를 어긴 차량을 단속 중이다. 벌금은 꽤 세다. 135유로 가량이다.
마침 차량 통제 작업을 하고 있던 시청 직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 직원은 “해당 구역 안에 사는 사람들, 이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 택시와 버스는 통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보시다시피 사람들이 차 없는 날을 잘 지키지 않는다. 파리가 워낙 차가 많은 도시라 사람들이 이런 행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캠페인을 1년에 한 번에서 매달, 매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리시의 ‘차 없는 날’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차도로 나온 보행자들은 차 없는 날을 한껏 즐기는 모양새다. 반면 한 파리 시민은 “제대로 된 대책없이 도시 전체 차량을 통제하는 것은 오히려 불편함만 야기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파리의 차 없는 날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오후 6시가 되자 도로에 차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다. 매캐한 매연 냄새가 코를 찌르고, 다시 ‘차로 가득한’ 파리로 돌아왔다.
파리=이다정 기자 dajeong@autoca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