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의 카페나 식당은 대부분 테라스를 갖고 있다. 작은 골목의 카페라도 테이블과 의자 한 두쌍 정도는 밖에 내놓는다. 이 테이블과 의자는 모두 길거리를 향해 있다. 일행이 아닌 행인을 바라보고 밥을 먹는다는 게 처음엔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이도 잠시 파리에 지낸지 2주차에 접어드니 일부러 테라스에 자리를 찾아 앉는다.
맑은 하늘이 눈부시던 오후, 규모가 조금 큰 카페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그 앞을 지나가는 자전거, 자동차, 사람들을 구경한다. 새빨간 클리오에 앉은 운전자가 그 옆 자리에 앉은 사람과 함께 리듬을 타고 있다. 아마 차 안에 신나는 노래가 흘러 나오는 중인가보다. 파리 내에서도 외곽에서도 클리오는 유난히 많이 보이는 차 중 하나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가 르노 클리오다. 올해 상반기에만 7만40대가 팔렸다.
클리오는 르노가 1990년부터 생산하는 소형차로 30여 년에 걸쳐 현 4세대까지 이어오고 있다. 지난 2012년엔 르노의 새로운 패밀리룩으로 갈아입었다. 또 3도어 해치백은 사라지고 5도어 해치백과 왜건만 남았다. 새 클리오 5도어 해치백 모델은 국내에서 지난 4월부터 판매되고 있다. 곧 완전 변경을 거친 클리오가 공개될 예정이다.
1세대 클리오부터 4세대 클리오까지 모든 세대의 클리오가 다양하게 파리의 도로를 지나 다닌다. 그 다음 많이 보이는 차가 푸조의 208이다. 이 외에도 르노 트윙고, 스마트 포투, 폭스바겐 골프 등이 눈에 자주 띈다. 유럽인들의 소형차, 해치백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다.
에펠탑, 샹젤리제 거리 등 번화가로 조금 더 가면 피아트 500과 미니 쿠퍼도 심심찮게 보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흰색 차체에 빨간색 캔버스탑을 단 피아트 500이 눈을 사로 잡는다. 특히 이 곳의 피아트 500은 빨간색부터 분홍색, 하늘색 등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색상이 많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소형차라도 다양한 가지치기 모델이 있다는 것이 새삼 부러워진다. 3도어와 5도어 트윙고가 나란히 지나가고 분홍색 피아트와 컨버터블 피아트가 줄지어 주차돼 있다. 유럽에서는 대중적인 차도 도어 개수를 다르게 한다든가, 지붕을 열 수 있도록 한다든가, 고성능 라인업을 선보인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소비자들에게 넓은 선택폭을 제공한다. 소형차로도 충분히 나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차에는 기아 레이와 모닝, 쉐보레 스파크가 있다. 모닝이나 스파크의 컨버터블 모델이 있다면 어떨 지 잠시 상상해 봤다. 요즘 같은 맑은 날씨를 만끽하고 싶을 때 지붕을 활짝 열 수 있다면 어떨까.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을 보여주듯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면 또 어떨까.
기아차 모닝은 터보나 아트 컬렉션 옵션 등을 통해 성능과 디자인에 변화를 주지만 그 다양성이 크진 않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경차나 소형차 종류가 그렇게 다양하지도 않다. 수요를 고려하면 양산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작은 차로도 마음껏 개성을 뽐낼 수 있는 날을 꿈꿔본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왕복 4차로의 매연을 잔뜩 맞으며 잠시 떠올려 본 단상이다.
파리=이다정 기자 dajeong@autoca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