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자동차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았습니다. 응급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구급차가 국내에 도입된 것이 불과 1990년대라고 합니다. 그 이전에는 구급차가 그저 사람을 빨리 실어 나르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동안 자동차의 발전만 이야기했던 것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자동차, 구급차에 대해 연재합니다. 우리나라의 구급차와 해외의 구급차를 비교해보고 미래의 구급차는 어떤 모습일지 그려보겠습니다. ▶︎[기획연재] #2 우리나라 구급차, 불만이 끊이지 않는 이유
구급차를 위해 도로 위 차가 일제히 길을 터주는 일이 우리나라에선 ‘모세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뉴스거리가 된다. 의아한 일이다. 최근에야 구급차에 길을 비켜주는 일이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각종 뉴스 보도와 캠페인 활동 덕분이다. 몇 년 전만해도 구급차가 사이렌을 앵앵 울리며 다가와도 꿈쩍 않는 운전자들이 많았다. 이런 배경엔 구급차에 대한 불신은 물론이고 우리나라 구급차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점도 한 몫한다.
우리나라 구급차의 최초 도입은 언제일까. 다소 충격적일만큼 그 역사가 짧다.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구급차가 보급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부터다. 불과 30년도 안 됐다. 취재를 시작하면서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한 관심이 겨우 이 정도였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전에도 구급차가 존재하긴 했지만 환자 한 명이 겨우 누워서 갈 수 있는 굴러가는 들 것 수준이었다. 장비가 없는 것은 물론 공간도 비좁아 응급 환자를 처치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먼저 ‘구급차’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려보자. 구급차는 부상자와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고 응급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장비를 갖춘 자동차다. 종류에 따라서 특별한 장비 없이 환자를 수송하는 ‘일반구급차’, 사고 현장에서 병원으로 수송하는 도중에 자동차 안에서 응급 조치를 취할 수 있거나 수술 등 필요한 치료를 할 수 있는 ‘구급진료차’가 있다. 운영 방식에 따라 ‘119 구급차’와 ‘사설 구급차’로도 나눌 수 있다.
수많은 발명품이 그렇듯 구급차의 시작은 전쟁터다. 고대에 정신병 혹은 나병 환자들을 실어 나른 자료가 남아있지만, 지금의 구급차 개념은 18세기 나폴레옹 전쟁 때 마차를 사용해 부상병을 긴급 수송한 일에서 시작됐다. 이후 구급차는 세계 각국의 군대와 전쟁에서 발전했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실생활에 쓰이기 시작했다. 자동차 시대가 도래한 이후에는 자동차에 사람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과거 구급차는 어땠을까. 구급차는 응급의료체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1990년대 초까지도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는 원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 때까지도 우리나라 구급차 운영 체계가 형편 없었다는 얘기다. 1993년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의 사고를 통해서도 그 실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구급차’라는 이름이 붙어 있긴 했지만 응급 환자를 위한 전문적인 장비나 약품 등이 턱없이 부족했다. 응급 환자를 병원으로 옮기는 역할을 했을 뿐 응급 처치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민간이 나섰다.
우리나라에 이동 중 응급 처치 가능한 구급차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995년. 이 구급차는 서양인 외모를 가진 한국인 의대생으로부터 시작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가정의학과 교수 겸 국제진료센터 소장으로 있는 인요한 씨다. 그가 한국형 구급차를 만들게 된 건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었다. 1984년 그의 아버지는 전라도 순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택시를 타고 큰 병원으로 이동하다가 운명했다.
당시는 서울 몇 군데 큰 병원을 빼면 앰뷸런스가 없던 시절이다. 1984년-1985년은 우리나라 차 등록대수가 100만대를 돌파한 시기다. 이런 가운데 병원에 타고 갈 구급차가 없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의 저서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을 통해 그는 “아버지가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 택시 안에서 돌아가신 일은 어머니나 내게 큰 상처로 남았다. 아버지의 미국 친구 분들이 모아 보내주신 돈 4만 달러로 나는 일반 승합차를 개조하여 앰뷸런스를 만들었고, 어머니는 그 차를 보고 마치 아버지를 다시 만난 듯 기뻐하셨다”고 털어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그는 한국의 응급의료체계를 바꾸겠다고 결심했다. 1992년 어머니와 함께 직접 한국형 앰뷸런스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15인승 승합차를 구해 목수와 용접공, 자동차 정비공을 불러 개조를 시작했다. 환자가 누울 수 있는 공간과 의사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응급장비도 설치했다. 1주일 만에 앰뷸런스를 완성하고 구조변경 형식승인까지 받았다. 이후 1993년 해당 119구급차를 순천 소방서에 기증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우리나라 도로 환경에 맞는 제대로 된 구급차를 제작해 보급하기도 했다. 그의 사연을 접한 한 중소기업 회장의 도움으로 그는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을 다니며 앰뷸런스와 응급구조시스템에 대해 살폈다. 그리고 1995년 한국형 구급차를 제작해 전국 소방서와 병원에 3000여대를 보급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 119구급차는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닛산자동차 계열사인 닷선(Datsun)의 14 모델을 개조한 구급차로 중상자 2명이나 경상자 4명을 동시에 이송할 수 있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는 “경성교통안전협회에서는 교통사고 또는 화재로 인한 부상자가 신속한 수당과 치료를 받지 못하야 귀중한 생명을 일는 수가 적지 안흐므로 이를 재빠르게 병원에 운반하는 구급차를 구입코저 저번 육천원을 들여 구급차의 제작을 경성모터스주식회사에 의뢰하엿던 바 금번 이것이 완성되어 삼일 경기도 보안과에서 시운전을 행하엿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이후 해방과 한국 전쟁 당시 구급차 운영 기록은 없다. 1972년 전북 전주 소방서, 1973년 부산 동래 소방서 등 일부 소방서에서 119구급차를 운영했다. 1982년 3월에는 서울소방본부에서 구급대(구급차 9대)를 만들면서 본격적인 119 구급 서비스를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운행 중인 구급차는 지난 2017년 기준 7,700여 대다. 특수구급차 3,502대, 일반구급차 4,262대를 포함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가 기관 소속인 119구급차는 1,384대다. 현재 119구급차로는 대부분 현대 스타렉스가 쓰인다. 이 전에는 현대차 ‘그레이스’, 기아차 ‘프레지오’, ‘봉고’ 등이 쓰였다. 이 가운데 1톤 화물차를 개조한 구급차는 극심한 진동 등으로 인한 승차감을 지적받았다. 이송 중인 환자는 물론 의료진들까지 들썩일 정도였다. 이 뿐만 아니라 관련 법규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사설 구급차로 낡고 오래된 차량이 그대로 쓰이면서 안전에 대한 지적도 쏟아졌다.
이 같은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가 구급차 운영이나 관리에 대한 기준 강화에 나섰다. 이 역시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특히 응급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길 때 쓰이는 민간 구급차에 대한 규정은 2013년부터 대폭 강화했다. 1995년 제정 이후 대대적인 손질에 들어간 것. 이 때부터 출고된 지 9년이 지난 구급차는 운행할 수 없도록 했다. 최초 등록 구급차 차령 또한 3년을 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이 밖에도 CCTV 등 영상기록장치와 운행기록장치·요금미터장치 등을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했다.
화물차 개조형 구급차들이 사라지고 모두 승합차로 바뀌었지만 불만은 여전하다. 우리나라 구급차 대부분은 현대차 스타렉스를 개조한 것인데, 차체 길이가 짧고 공간이 비좁아 안정된 자세로 심폐소생술이 불가하다는 것. 응급 상황 시 기도 삽관 등의 구급 활동에도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흔들림 역시 여전하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08년에는 구급 활동을 위해 좀 더 크고 첨단 기술을 더한 벤츠 스프린터를 구입, 개조해 119구급차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당 2억 원이 넘는 구입 비용을 비롯해 크기, 수리・유지 비용 등의 문제로 금세 자취를 감췄다. 응급 환자들의 안전을 위해 현행 구급차의 성능과 규격을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다.
지난 2018년 국정감사에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선 구급대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구급차를 이용한 임무 수행 중 가장 힘든 작업이 뭐냐는 질문에 740명 중 44.8%(322명)이 치료 행위 중 몸 흔들림이라고 답해 가장 많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다정 기자 dajeong@autoca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