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에 꼭 필요한 공간 확보 실패해…누워가는 택시” 비판도
우리나라의 구급차는 크게 119와 사설로 나뉜다. 국가가 운영하는 소방청 소속의 119구급차는 ‘응급출동’ 표시를 하고 특수 구급차로 분류하며 보건복지부에서 허가하는 사설 구급차는 대부분 일반구급차로 ‘환자이송’ 혹은 ‘환자후송’이라고 표시한다. 표시가 다른 만큼 역할도 크게 다르다. 이번 기획 연재에서는 119구급차를 중심으로 현황을 파악하고 개선점은 없는지 확인해본다. / 편집자 주
“요즘 앰뷸런스 보면 울고 싶어. 엉터리여. 예전이랑 비교하면 나아진 게 없어.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어. 미쳐부러.”
쩌렁쩌렁한 전라도 사투리가 소장실을 가득 매웠다. 앰뷸런스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가 커지고 예민해진다는 그에게 ‘사람 살리는 구급차’는 소명이고 숙명이다. 190cm가 넘는 장신에 희끗한 금발, 푸른 눈을 지녔지만 구수한 말투와 행동에는 영락없는 한국인의 기질이 그대로 묻어있다.
소장실 한 쪽 벽면에는 “지불여순천(地不如順天, 이 땅에 순천만한 데가 없다)”이라는 붓글씨가 크게 붙어 있다.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유년을 보낸 그는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의 외증손자다. 그의 집안은 선교, 봉사활동, 북한결핵퇴치사업 등 한국 근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그는 왜 한국을 위한 구급차를 만들기 시작했을까?
#우리나라 구급차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119구급차의 업무는 크게 구조, 구급, 화재 진압 3가지다. 이 중 구급 활동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2018 소방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7년도 119 구조 활동 출동 건수는 8만 5194건인데 반해 119구급 출동 건수는 278만8101건이다. 소방청 웹사이트에 매일 업데이트되는 일일 활동 현황만 봐도 구급활동 비율이 월등히 높은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 구급 활동을 위해 119구급차에 타는 구급대원들에게는 한정적인 응급 구조 행위만 허용된다. 의사가 아닌 사람의 의료행위는 제한돼 있기 때문. 반면 구급차의 영역을 더 넓혀야한다는 주장과 함께 사재를 털어 첫 한국형 구급차를 개발해 보급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인요한 교수를 만났다.
왜 구급차를 만들었을까? 시작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유는 아버지의 죽음 때문. 1984년 4월 10일 그가 의과대학 2학년생 이던 시절, 그의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를 음주운전 관광버스가 들이받는 교통사고가 났다. 당시 아버지는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받지 못한 채 앰뷸런스가 아닌 택시를 타고 병원을 향했다. 앰뷸런스가 있긴 했지만 드물었고, 제대로된 호출망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던 탓이다. 그의 아버지는 전라도 순천에서 택시를 타고 광주의 큰 병원으로 이동하다 운명했다.
이후 그는 의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갔다가 “그 곳의 탄탄한 응급 시스템을 보고 울분이 터졌다”며 당시 심경을 토로했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그는 아버지 친구들이 모아 보내준 돈 4만 달러로 1992년도에 구급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장비까지 합쳐 8000만 원에서 1억 원 가까이했던 미국 구급차를 사오기엔 턱 없이 부족한 비용이었다. 그래서 직접 만들었다.
당시 우리나라 구급차는 어땠을까. 대부분 12인승 기아자동차 베스타나 현대자동차 그레이스였다. 인 소장의 표현으로는 '누워서 가는 택시' 수준이었다. “93년도만 해도 환자가 구급차에 제대로 고정돼 있지 않아서 환자 위에 세워져 있던 산소통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람도 있어요. 실제로 일어난 사례라니까요. 구급 장비도 함 하나에 채워져 있는 게 전부고”
그는 구급차를 만들기 시작하며 15인승 승합차 ‘아시아 하이토픽’을 선택했다. 당시의 12인승 승합차보다 길이는 67cm, 높이는 4cm 더 길고 높아서 응급 처치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목수와 용접공, 자동차 정비공과 함께 뒤를 뜯어 개조를 시작했고 환자가 누울 수 있는 공간과 버스 승무원 의자를 떼어와 응급 처치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심장 제세동기 등 응급장비도 처음 들여왔다. 구조 변경 형식 승인까지 받고 매체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대량 생산에 들어가기도 했다.
#미국, 일본, 프랑스, 캐나다 돌며 구급차 특장 발판 마련해
이후 그의 사연을 접한 ‘셀보’라는 회사 회장의 도움을 받아 미국, 프랑스, 일본, 캐나다 등을 돌아다니며 앰뷸런스와 응급구조시스템을 살폈다. 그리고 1995년 한국형 구급차를 완성해 전국 소방서와 병원에 보급했다. 점차 완성형을 갖춰가는 듯했던 구급차는 1997년 IMF 사태를 기점으로 그대로 멈췄다. 아니, 퇴행했다. 공간이나 장비 등은 해결했지만 구급차의 출력과 승차감은 해결하지 못한 상태로 발전이 멈췄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현재로 넘어왔다. 그리고 그는 현재 구급차 실태에 대한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구급차를 개발하고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구급차는 나아진 게 없다.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5년 전부터 구급차가 다시 12인승으로 바뀌어버렸다”며 12인승 승합차를 개조한 구급차로는 차체 길이가 짧고 공간이 비좁아 호흡을 도와주기 위한 기도 삽관을 하지 못한다. 또 심폐소생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도 없다. 심장 압박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앰뷸런스를 직접 살펴보기 위해 인요한 교수와 잠시 응급실 앞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눴다. 응급실 앞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동안 두 대의 구급차가 들어왔다. 비록 사설 구급차였지만 구급차가 열리고 환자가 누워있던 들 것 옆 쪽에 의자는 운전석을 향해 있었다. 환자의 윗 공간은 다리 하나 들어가기에도 빠듯해보였다.
그는 “이게 현실이다” 라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지금 앰뷸런스 보면 울고 싶다. 너무 엉터리다. 미국 연방 규격은 백과사전만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3-4장이 끝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구급차가 다시 12인승으로 돌아간 이유를 묻자 그는 “모르겠다. 이를 참을 수 없어 소방청장, 복지부 장관 응급의학회장, 현대차 회장과 사장에게 이를 개선해 달라고 편지를 썼다. 5곳에 편지를 썼는데 딱 한 곳, 보건복지부로부터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답변만 받았을 뿐”이라며 “이후 소방청에서 앰뷸런스 개선팀을 보내긴 했는데 의지가 별로 없다. 이유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국내 구급차 규격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8년에는 좀 더 크고 첨단 기술을 더한 벤츠 스프린터를 구입, 개조해 119구급차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당 2억 원이 넘는 구입 비용을 비롯해 크기, 수리・유지 비용 등을 문제로 들어 금세 자취를 감췄다. 최근 늘어나는 15인승 쏠라티 기반의 구급차에 대해서 인 교수는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직접 만들어보니 장비 등의 공간 때문에 사각 형태로 가야한다는 것. 섀시에 집을 새로 짓는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구급차보다 빠른 견인차…무엇이 돈 되는지 잘 보여줘
그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구급차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그가 말하는 구급차의 꼭 필요한 조건은 ‘메디컬 컨트롤(medical control)’이다. “우리나라 응급체계에서 가장 문제점은 의사와 응급구조사의 소통이 없다는 것이다. 화상통화 등과 같은 기술은 있는데 실제로 제대로 이뤄지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에게 구급차 바꿔야한다고 주장하면 우리나라 비용 등이 실정에 안 맞는다고 반박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 죽는 게 우리 실정에 안 맞아요? 그게 돈이 더 많이 듭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고쳐야만 하는 일이에요. 이건 옳은 일이에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아름다운 일을 할 기회가 별로 없는데 이건 진짜 아름다운 일입니다. 나를 위한 게 아니라 환자를 위한 일입니다”
“지금도 고속도로에 나가면 견인차가 구급차보다 더 많고 빠르게 다니는 걸 봤을 때 사람 생명보다 차가 더 중요한가, 무엇이 더 돈이 되는지 보여주는구나, 뭔가 잘못됐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응급 구조뿐만 아니라 모든 병원 시스템 자체가 변해 모든 환자가 좋은 구급차에 실려서 좋은 치료를 받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라며 마지막 바람을 전했다.
이다정 기자 dajeong@autoca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