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가장 작은 SUV 베뉴를 출시했다. ‘혼족’을 주력 소비층으로 삼았고 이들의 삶을 주제로 한 광고도 제작했다. 혼자 낚시가고 누구의 잔소리도 듣지 않고 침대에서 식사를 하며 마트에 혼자 간다. 아름다운 화면의 광고로 표현한 베뉴의 혼족이다.
혼족은 화려하다. 삶을 즐기는 것 같지만 녹록하지 않다. Z 세대라고 부르는 20대 혼족들은 부모님의 품에서 외환위기를 겪었고 스마트폰, 인터넷과 함께 성장했다. 열심히 벌어도 서울의 아파트 한 채는 꿈도 꾸기 어렵다. 수백 장 이력서를 보내도 직장을 구하기 힘들다. 냉혹한 세상에서 즐겁게 살아남는 법으로 ‘혼족’을 택했다. 화려하게 소비하지만 불안한 미래에 대한 보상심리다.
베뉴는 화려하다. 현대자동차의 가장 비싼 SUV 팰리세이드와 닮았다.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SUV 디자인 트렌드를 적용했다. LED램프와 반짝이는 라디에이터그릴은 소확행으로 이 차를 선택하기 충분하다. 아무도 구입하지 않더라도 수동변속기 모델이 1473만원이니 손에 잡힐 것처럼 보인다. 화려한 겉모습과 편리한 사양을 추가하려면 야금야금 값이 올라가는 것은 이미 익숙한 자본주의의 맛이다.
혼족은 불편하다. 화려한 싱글이란 말은 TV 속에나 존재한다. 20여년 받은 교육으로도 사회 구성원이 되기엔 장벽이 높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일도 만만치 않다. 기성세대들은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혼자 밥 먹고, 영화보고, 마트에 가고 심지어 술도 혼자 마시는 것이 편하다. 사회와 주변과의 불편한 관계보다 혼자가 편하다. 그래서 혼족이 된다. 혼족은 목표가 아니라 현상이다. 불편한 사회현상.
베뉴는 불편하다.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가격을 낮추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다. 전동시트, 통풍시트는 아무리 돈을 내더라도 추가할 수 없다. 기존 자동차들처럼 가죽핸들과 자동변속기, 널찍한 내비게이션에 썬루프까지 장착하려면 차 값은 2000만원이 된다. 유행에 맞춰 첨단 안전사양을 기본부터 적용했지만 뒷좌석 팔걸이, 에어컨 송풍구까지 많은 것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없으면 모르겠지만 알고 나면 불편하다.
혼족은 화려하지만 불편하다. 20대의 혼족은 젊음의 낭만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 1인가구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60대 이상 혼족은 쓸쓸하다. 연평균 6.4% 증가하는 미혼의 혼족이 젊음의 낭만이라고 해석한다면 연평균 9.8% 증가하는 이혼자들의 혼족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4.5% 증가한 사별한 혼족. 이들에게도 ‘혼라이프’라는 이름을 붙여야할까.
베뉴는 화려하지만 불편하다. 작은 차체에 익숙한 1.6리터 가솔린 엔진과 IVT 변속기를 얹었다. 무난한 구성이다. 작고 짧은 차에 토션빔 서스펜션을 뒤에 붙였다. 매일 가까운 마트에 다녀오긴 괜찮겠지만 고속도로에 올라가면 여지없이 불편하다. 세계 최초로 적외선 무릎워머를 장착했다는데 겨울과 여름만 있는 듯한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통풍시트 옵션도 필요하다. 낚시대라도 넣으려면 2열 시트를 접어야한다. 혼자니까 상관없으려나.
혼족은 트렌드다. 다만 지향점이 아니라 사회 현상이다. 선택일 수 있지만 ‘차라리’라며 플랜 B로 생각해낸 지점이다. SUV는 트렌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가 베뉴와 같은 소형 SUV다. 다만 ‘차라리’라며 포기의 심정으로 구매하는 차가 아니라 생애 첫 차로 큰 기대와 함께 선택하는 자동차다. 그래서 현대자동차의 혼족 마케팅은 불편하다. 혹시 ‘우리 자동차 가운데 제일 싼 차에요’라고 솔직하게 말하기 힘들어 만들어낸 마케팅 수식어라면 흔쾌히 혼족들은 이를 받아들일까.
오토캐스트=이다일 기자 auto@autoca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