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가 구입한 지 8개월 된 레인지로버 스포츠를 환불했다. 문제가 발생한 지 불과 사흘이 지난 시점에서다. 이례적으로 빠른 결정이며 소비자를 위해 긍정적인 결정이다. 발 빠른 대응에 칭찬의 박수를 보내지만 이내 씁쓸하다. 왜 환불했을까. 이유가 궁금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했을까.
지난 16일 서울 잠실의 한 쇼핑몰 주차장에 검은색 레인지로버 스포츠가 들어온다. 운전석에서 내린 여성은 트렁크에서 유모차를 꺼내고 전동트렁크를 닫는다. CCTV에는 뒷유리창을 두드리며 안을 들여다보는 여성의 모습이 이어진다. 약 30분 뒤 119 구조대가 도착해 조수석 유리를 깨고 문을 열었다. 차에는 한 살 배기 아기가 홀로 타고 있었다. 자동차 키도 차 안에 있었다. 요즘 대부분의 차에 들어간 스마트키. 잠기면 안 되지만 차는 잠겼다.
이 여성은 재규어랜드로버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문 잠김은 서비스센터의 업무가 아니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뒷자리에 한 살배기 아기가 있다고 말했는데도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햇볕 내리쬐는 곳이 아닌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이 같은 소식은 연합뉴스TV의 단독 기사로 전파를 탔고 이 여성은 레인지로버 스포츠를 환불받았다. 작년 12월 구입한 차다. 레몬법 적용 대상도 아니다.
기회와 과정에 대해 재규어랜드로버에 물었다. 환불 결정을 하는 기준이 있는가. 이번 사건은 어떤 이유로 환불한 것인가. 자동차의 환불은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이 있고 국토부가 1월부터 시행중인 소위 ‘한국형 레몬법’도 있다. 이 사례에 해당하는 지를 물었다. 보통 중대 결함이 반복될 경우에 환불을 결정하고 한 차례의 고장이라도 수리에 한 달 이상이 걸리는 경우를 환불 대상으로 정한다. 이마저도 법적인 분쟁 해결절차를 따르려면 국토부 산하의 ‘자동차 안전, 하자심의위원회’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빠른 환불 결정은 환영한다. 하지만 문잠김은 자동차의 중대 결함이 아니다. 스마트키는 오작동할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하라고 설명서에 쓰여 있다. 법적으로는 제조사의 책임이 가볍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환불의 기회를 제공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뚜렷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소비자의 개인적인 사유도 있었고 회사에서 결정한 것”이라는 두루뭉술한 이야기만 돌아왔다. 과정을 물었다. 회사 내에 환불을 결정하는 위원회 혹은 의사결정 기관 즉, 시스템이 있는지를 물었다. “없다” 답변은 단순명료했다.
이 회사는 최근 선루프에서 물이 새는 영상으로 지탄을 받았다. 그런데도 환불은 해주지 않았다. 그간 숱한 결함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어졌지만 환불은 높은 벽이었다. 백정현 대표는 앞에 나서서 서비스를 개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였을까. 모든 문제에 대해 환불 결정이라는 해법은 마지막에나마 열려있었을까. 누구라도 합리적으로 이해할 만큼 환불의 과정은 공정했을까. 억대의 고급 SUV를 구입한 소비자에게 이런 의문에 대한 답변은 반드시 필요하다.
레몬법이 시행된 지 이미 반년이 지났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게 환불은 아직도 하늘의 별따기다. 경실련에 따르면 국토부 산하 자동차 안전, 하자심의위원회에 접수된 사안은 올 7월 초까지 9건에 그쳤다. 위원회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이 가운데 확정된 결정은 아직 한 건도 없다. 법정은 아니지만 마치 법정처럼 소비자와 제조사가 공방을 벌여야 한다고 한다. 이 과정은 지루하게 이어진다. 긴 싸움에 소비자는 언제나 약자다. 결국, 아직도, 아무도 환불을 받지 못했다. 그 사이 자동차 결함은 매일매일 제기된다. 에바가루가 나온다는 자동차. 불이 난다는 자동차. 물이 샌다는 자동차.
과연 소비자들은 자동차 제조사의 누군가가 기분 내키는 대로 결정하는 ‘환불’에 기대야할까. 아직도 결함은 소비자가 입증해야할까. 뚜렷한 대답을 듣고 싶다. ‘왜 환불했습니까?’
오토캐스트=이다일 기자 auto@autoca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