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남쪽에서 출발하는 일행과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기 위해 시작은 기차로 이동했다. 서울을 가장 빨리 빠져나가는 방법이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천안아산역까지 KTX를 탔다. 시속 300km/h로 달리는 기차. 출장이자 여행의 시작이 순조롭다. 찜통 같은 더위에 서울 시내를 차로 가로지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순조롭다.
부산으로 가는 길은 다양하다. 기차를 타도되고 비행기를 타도된다. 차로 가면 보통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지만 중부내륙을 거쳐도 되고, 국도로 돌아가면 볼거리는 더욱 많다. 이 가운데 오늘 일행과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기로 했다. 부산을 오가는 데 발이 되어줄 차는 폭스바겐의 티구안이다.
또 다른 일행이 타고 오는 폭스바겐 아테온과는 금강휴게소에서 만난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대한민국 교통 역사의 시작, 경부고속도로의 아픈 기억이 담긴 곳이다.
잠시 역사를 돌아보자면 경부고속도로는 1970년 완공했다.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 국토대동맥 사업으로 추진한 대규모 사업이다.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77명이 순직했다. 그들의 위령탑이 이곳 금강휴게소에 있다. 휴게소에서 빠져나오면 ‘경부고속도로 순직자 위령탑’ 안내판만 조그맣게 붙어 있어 대부분 그냥 지나친다.
한 발 더 들어가면 마음은 더욱 무거워진다. 8월엔 광복절이 있다. 일본과의 감정이 좋지 않은 시기인데, 올해는 유독 그렇다. 박정희 정권 시절 물류를 위해 만든 경부고속도로는 일본에서 1962년 받은 차관을 이용해 만든 인프라 중 하나다.
당시 강원도, 더 나아가 중국을 연결하는 동-서간 고속도로를 뚫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과 맞붙었지만, 일본과 가까워 교류가 쉬운 서울-부산간 고속도로로 결정됐다. 많은 사람들이 순직한 것도 공사가 매우 어려운 산간 터널을 뚫어야 했고 이마저도 기한 내에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고속도로는 과속으로 지어졌다.
2년 5개월 만에 연인원 892만 8000명의 인원이 힘을 합쳐 수많은 터널을 뚫고 길을 닦았다. 빠르게 지어진만큼 우여곡절과 후유증도 낳았다. 중앙분리대가 없거나 도로폭이 좁아 큰 사고를 유발하는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개통 후 10년 간 끊임없는 보강・보수 공사가 이어졌다.
당시는 격동기였다. 1968년에 경부고속도로를 착공하고, 현대자동차는 1967년 12월에, 삼성전자는 1969년 1월에 창업했다. 포항제철도 1968년 4월에 창업을 했으니 자동차 산업의 현대적 근간은 모두 이즈음 발생했다.
말 많고 탈 많던 경부고속도로는 이제 중국,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아시안 하이웨이를 바라보고 있다. 도로를 지나다보면 ‘아시안 하이웨이 AH1’ 이정표를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아시아고속도로 1호선의 구간에 포함된다는 의미다. 이 고속도로는 일본에서부터 우리나라와 중국·동남아시아·인도·터키 등을 거쳐 유럽고속도로망과 연결된다.
금강휴게소의 씁쓸한 역사를 뒤로한채 다시 길을 나섰다. 부산까진 휴게소 들른 시간을 합해 총 6시간이 걸렸다. 화려하고 활기차다. 지금의 부산은 그런 도시다. 목적지인 해운대에 이르자 씁쓸한 마음은 사라졌다. 전국에서 찾아온 피서객으로 가득하다. 식당, 카페마다 사람들로 가득하다. 해변에는 파라솔이 줄지어 서있으니 덥지만 시원해보인다.
시승으로 시작했지만, 도착지가 피서지다보니 일과 휴가의 중간점을 찾기로 했다. 폭스바겐 행사장인 해운대 ‘더베이 101’로 찾아갔다. 폭스바겐은 올해 아테온을 주제로 시승과 브랜드 체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로드투어를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제주도에 이어 여름 휴가철과 꼭 맞는 피서지 ‘해운대’를 두 번째 로드투어 장소로 택했다.
이곳에선 아테온 시승 행사를 비롯해 다양한 게임 및 이벤트를 진행해 경품을 나눠준다. 모두 폭스바겐 아테온에 관한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해가 지고 조명이 하나둘씩 켜진다. 더베이 101 야경을 배경 삼아 이뤄진 버스킹 공연으로 행사장의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부산의 밤은 깊어갔다. 뜨겁다 못해 따가운 햇볕을 피해 바깥으로 나온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떠들고 웃었다. 부산에 왔으니 바다는 한 번 봐야지 않을까.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해운대 해수욕장에 잠시 들렀다. 바지를 걷고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여름 바다라고 하기에 물은 꽤 차가웠다. 정수리까지 얼얼해지는 차가운 바닷물에 장거리 운전의 피로를 씻어냈다.
일행과 함께 타고온 티구안은 장거리 주행에서 빛을 발했다. 총 4명이 타고 온 길에 편안했다. 폭스바겐 특유의 편안하고 안정적인 운전 자세는 물론이고 크루즈, 안전 기능, 실내 공간, 적재량 등을 따져봐도 일상 생활에서 충분히 여유롭고 넉넉한 차다. 가족과 함께 떠나는 길이어도 만족할 만하다.
이튿날의 부산은 덥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호텔의 시원한 에어컨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부산에는 밀면, 돼지국밥, 대구탕이 유명하다고 하지만, 아침 식사는 호텔이 주는 조식으로 대체했다. 게으르게 살아도 되니 휴가다. 해운대가 내려다보이는 창을 옆에 두고 배를 채웠다. 이제 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차를 타야하니 또 다시 일이다.
부산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다. 근현대사에 얽힌 역사도 많다. 지금의 20대-30대에게 낯선 역사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한국과 일본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이야기 속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다.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인 특히 올해 8월엔 더욱 그렇다. 부산은 일본으로 향하는 바닷길의 시작이다. 일본보다 한국에 더 가까운 일본의 섬 대마도는 이미 한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겨 어렵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항일’이 아니라 ‘극일’을 강조한다. 일본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다.
부산은 항일 운동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광주학생의거와 더불어 단 하루이지만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항일학생운동이 일어났던 도시다. 1940년 일제의 전시체제 강화 아래 경상남도 학도 전력 증강 국방 대회를 열렸다. 당시 한국학생에 대한 편파적 심파 판정이 일자 이에 맞서 부산 보수동과 광복동 일대에서 1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여 항일학생운동을 펼쳤다. 요즘은 부산에서 출발하는 배를 통해 ‘극일’의 의지를 확인한다.
대한민국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길을 달리고 돌아왔다. 서북쪽 서울에서 출발해 동남쪽 부산으로 달렸다. 근현대사의 아픔을 겪은 곳도 지났고 자동차와 고속도로, 일본과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같은 도로를 여러 번 다녔지만 의미가 남다르다. 교과서에서 만났던 곳, 현재의 그곳과 과거의 이야기가 얽히고 있다. 8월 15일.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부산을 찾아가는 이가 있다면 함께 기억하고자 글로 남긴다.
부산=이다정 기자 dajeong@autoca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