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포르쉐 본사로부터 차량과 인스트럭터들이 직접 한국을 방문했다. 독일로부터 온 차들이기 때문에 독일 번호판을 달고 있다. 따라서 밖으로 나가 일반 도로를 주행할 수는 없지만 한국 시장에 정식으로 출시하지 않은 포르쉐 모델들까지 타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다만,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독일 본사의 드라이빙 인스트럭터들은 입국 후 2주간의 격리상태였고, 그들을 대신해 국내 최고의 프로 레이싱 드라이버 선수들이 자리했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쏟아지던 2일.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다양한 포르쉐 모델들을 경험했다. 올해 행사의 가장 큰 주목을 끈 스타는 바로 타이칸. 포르쉐가 브랜드 최초로 선보인 완전 전기차 모델이다.
홀가 게어만(Holger Gerrmann) 포르쉐코리아 CEO와 나눈 대화에서 그는 “정말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 다”며 타이칸에 대한 자신감과 기대를 드러냈다. 포르쉐는 이번 행사를 위해 ‘타이칸 터보’와 ‘타이칸 터보 S’ 두 모델을 준비했다. 타이칸 터보로는 정지상태에서의 직진 가속 체험을, 타이칸 터보 S로는 트랙을 한 바퀴 돌아보는 체험을 했다.
타이칸 터보와 터보 S는 앞바퀴와 뒷바퀴 축에 각각 한 개씩 총 두 개의 전기모터를 장착하고 네바퀴를 굴리는 시스템을 사용한다. 타이칸 터보의 최고출력은 680마력을 발휘하고, 터보 S는 오버부스트 기능을 이용해 런치 컨트롤을 사용하면 최대 760마력을 발휘한다. 이를 통해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h까지 가속하는데 터보는 3초, 터보 S는 2.6초의 놀라운 성능을 보여준다.
처음으로 시동을 걸어본 타이칸에서는 이전 전기차에서 들을 수 있었던 웅-하는 소리와는 뭔가 다른 독특한 소리가 들려왔다. 뭔지 모를 고음의 소리가 섞여 정말로 영화 속 우주선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 같았다. 이는 ‘일렉트릭 스포트 사운드’라는 기능의 가상 사운드로, 인포테인먼트 설정을 통해 키고 끌 수 있는 기능이다. 보통 강력한 내연기관 엔진의 소리를 써서 스포티함을 배가하는 가상 배기 사운드와는 달리, 전기차 특유의 소리를 스포티하게 증폭했다는 점이 신선하다.
신형 911(992)에 사용한 것과 비슷한 모양의 작은 기어레버는 독특하게도 스티어링휠 칼럼과 인포테인먼트 스크린 사이 작은 공간에 자리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위치라 처음에 기어레버를 찾는데 잠깐 허둥댔다.
이제 타이칸 터보를 타고 직선 주로 출발선에 섰다. 인스트럭터의 카운트다운 ‘3.2.1.출발’. 가속패달을 에누리 없이 끝까지 내려 밟았다. 하체가 붕 뜨는 기분을 느꼈다. 과장 없이 초고속 롤러코스터가 갑자기 출발할 때의 감각과 유사하다. 살짝 어지러움까지 느껴질 정도다. 놀란 눈으로 인스트럭터를 쳐다보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제로백 3초. 내연기관 엔진을 장착한 슈퍼카의 3초와 그 감각은 다르다.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최대토크로 가속하는 감각은 중독적이다. 이쯤 되니 제로백 2.6초인 타이칸 터보 S의 직진가속 감각은 어떨지 상상도 하기 힘들다.
그러나 제로백은 차의 성능을 나타내는 지표 중 하나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특히, 테슬라 모델 S의 수치상 제로백이 더 빠르기 때문에 이 정도로 타이칸의 성능을 인정할 수는 없다.
이번에는 타이칸 터보 S를 타고 트랙을 돌아볼 차례. 다른 차량들은 모두 한 바퀴를 도는 프로그램이었지만 타이칸은 두 바퀴를 도는 프로그램이 계획됐다. 이번 행사의 주인공 대접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창천병력 같은 소식이 차 안의 무전기를 통해 들려온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아쉽게도 한 바퀴만 도는 것으로 이번 프로그램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바퀴에 보통 3분 내외가 걸리는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단 한 바퀴라니. 힘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더군다나 이 비로 인해 선두의 인스트럭터 차량은 주행 페이스를 안전한 범위로 계속해서 낮췄다.
이런 상태에서 타이칸 터보 S를 타고 트랙에 들어섰다. 긴 직선주로 끝에 위치한 첫 번째 완만한 오르막 우코너를 지나 90도 코너로 들어갔다. 차체의 움직임이 남다르다. 아무리 느린 페이스라 할지라도 보통차는 코너를 돌면 좌우 움직임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차는 아직 그런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는다. 좌코너, 우코너, 헤어핀을 전부 돌아 피트로 돌아올 때까지 타이칸은 허둥대는 모습을 절대 보여주지 않는다. 그야말로 땅에 붙은 것만 같은 움직임이다. 포르쉐는 차량의 아랫부분에 배터리 하중을 집중하고 무게중심을 최대한 아래에 묶어두는 설계를 통해 이런 움직임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타이칸의 핸들링을 경험하고 나니, 테슬라 모델 S와 타이칸은 추구하는 바가 전혀 다른 차라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직선에서의 가속력을 비교할 수는 있어도 전체적인 주행성은 추구하는 바가 전혀 다른 두 차다. 모델 S는 보다 편안하면서 빠른 승용 전기차를 지향한다면, 타이칸은 그야말로 본격적인 스포츠 세단을 지양한다는 것이 분명히 느껴진다. 이미 차 안에 앉을 때 체감한 낮은 시팅 포지션에서부터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낮은 시팅포지션은 뒷좌석 헤드룸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타이칸의 루프라인은 다른 ‘쿠페형 세단’들에 비해서도 더욱 낮고 유려한 실루엣을 그리며 트렁크와 만난다. 파나메라보다 한층 더 911과 비슷한 루프라인을 만든다. 하지만 이런 루프라인에도 불구하고 2열 머리공간은 174cm 성인 남성이 앉아도 주먹 하나가 (꽉 차게) 들어가는 여유가 있다. 무릎공간도 제법 답답하지 않은 정도의 여유를 주지만 발 밑 공간은 타이트하다. 또한, 낮은 위치 때문에 뒷자리에서 보는 전면 개방감은 그리 좋지 않다.
타이칸 이외에도 이날 많은 종류의 포르쉐 차량을 경험했다. 911 터보 S의 조수석에서 제로백 2.6초의 가속과 이후 최대치의 브레이킹으로 느껴본 포르쉐의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PCCB)의 성능은 놀라웠지만, 여운이 그리 길게 가진 않았다. 타이칸의 감흥이 다른 것들을 덮어버리기에 충분했다.
포르쉐가 준비한 그들의 첫 전기차는 다시 한번 그들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많은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포르쉐가 외계인들을 감금하고 고문해서 차를 만든다고 이야기한다. 매번 압도적인 성능의 차들을 선보이는 까닭이다. 그 우스갯소리의 연장선에서 이야기하자면, 타이칸은 마치 감금당한 외계인들이 탈출을 위해 개발한 우주선 같아 보인다. 소리, 가속력, 주행 능력 모두 정말로 생소하고 놀라운 감각을 전달한다.
1억 9220만원부터 시작하는 타이칸 터보의 가격은 너무나 비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비슷한 급의 테슬라 모델 S 퍼포먼스의 가격이 1억 3300만원부터 시작하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실제로 경험한 모델 S와 타이칸은 전혀 다른 성향의 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차도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세단에 비해 본격적인 스포츠 주행을 위한 스포츠 세단은 훨씬 높은 가격표가 달려있게 마련이다.
포르쉐는 연말 타이칸 4S의 고객인도를 시작으로 내년 상반기에는 타이칸 터보와 터보 S를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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