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로엥 영감의 원천은 ‘사람’과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이를 자동차 한 대에 어떻게 담을 것인가 고심했다. 1948년 정식 출시된 2CV가 대표적이다. 프랑스 농민을 위한 차량으로 50kg 하중으로 4인이 탈 수 있고 100km당 3~4리터를 소비할 것. 서스펜션은 달걀 하나도 깨뜨리지 않은 채 달걀 바구니를 걸고 운행할 수 있을만큼 매끄러울 것. 1936년 2CV를 만들기 위해 시트로엥 개발자들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이토록 구체적인 개발 목표 아래 등장한 2CV는 출시되자마자 농부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밀짚모자를 쓰고도 타고 내릴 만큼 실내 공간이 여유로웠고, 지붕은 커다란 농기계도 자유자재로 실을 수 있도록 천을 말아올려 쉽게 열고 닫을 수 있었다. 매끄러운 승차감의 서스펜션 덕분에 울퉁불퉁한 시골길도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트로엥은 시대가 변하면 변하는대로 그 시대의 현재를 자동차에 충실히 반영했다. 1970년대 중반에는 2CV가 젊은이들의 차량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시트로엥은 값싸고 실용적인 것은 물론 다양한 색상 조합으로 개성까지 발휘할 수 있는 차로 만들었다.
이처럼 ‘사람들을 위한 자동차’라는 2CV의 콘셉트는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990년 판매가 중단될 때까지 이 차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500만대 이상 판매됐다. 지금까지도 자동차 역사에서 상징적인 모델 중 하나로 남아 전세계 수집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마주치기 힘든 차량이지만 여전히 프랑스 거리를 다니다보면 꽤 흔히 접할 수 있는 친근한 차다.
2CV 생산이 중단된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고민의 흔적은 시트로엥 막내 ‘C3 에어크로스’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재다능한 도심형 데일리 SUV. 이 차의 콘셉트다. 시트로엥의 설명에 따르면 편안함은 물론 스타일과 실용성을 모두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요구를 반영했다. 이를 느껴보고자 시트로엥 C3 에어크로스를 타고 서울 도심에서 근교로 여행을 떠났다. 이 차와 어울릴 만한 여행 방식을 택했다. 짐을 가볍게 챙겨 피크닉을 떠났다. 이른바 카크닉(Car + Picnic)이다. 목적지는 경기도 포천시에 위치한 백로주 캠핑장이다.
시트로엥 C3 에어크로스는 소형 SUV로, 작은데 크다. 무슨 얘기인가 싶지만 다른 소형 SUV 모델과 비교해 전폭이나 전장은 짧지만, 전고는 월등히 높다. 1650mm의 높이로 소형 SUV계 덩치로 꼽히는 기아 셀토스(최대 1620mm)보다도 전고가 높다. 덕분에 성인 4명이 앞뒤 좌석 어디에 앉아도 넉넉한 머리 공간이 나온다. 여기에 가로 705mm, 세로 930mm의 뒷좌석까지 펼쳐진 파노라믹 선루프로 개방감도 좋다. 전고에 비해 전장, 전폭은 작은 편이어서 바쁜 도심이나 좁은 골목에서 여유로운 주행이 가능하다. 여러모로 쓰임새 좋은 비율이다.
지루할 틈 없는 디자인도 시트로엥만의 특징이다. 지난 2019년 국내 처음 출시됐던 차량임에도 우리나라 도로에서 자주 마주칠 수 없는 탓인지(?) 구식의 느낌이 없다. 캠핑장에 도착해 잔디밭 위에 놓인 차량을 살폈다. 캠핑장에 있는 자동차 중 제일 독특한 외모를 지녔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날 세운 곳 하나 없지만 동글동글 개성이 넘친다. 그러면서도 SUV 본질에 충실했다. 짧고 높은 보닛과 앞뒤로 붙은 스키드 플레이트, 커다란 휠하우스로 SUV 본연의 분위기를 강조했다. 여기에 LED 주간주행등까지 이어진 더블 쉐브론 엠블럼과 헤드램프, 3D 효과 리어램프, 둥근 사각형의 공기 흡입구로 시트로엥의 패밀리룩을 입었다.
실내는 힘을 준 곳과 뺀 곳이 확실하다. 특히 스타일에 힘을 힘껏 실었다. 외관 곳곳에 쓰인 둥근 사각형의 그래픽 요소를 실내의 모든 부분에 사용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운전대는 물론 송풍구, 도어트림, 손잡이가 모두 둥근 사각형이다. 여기에 포인트 컬러를 더해 독특함을 살렸다. 최상위 트림인 샤인 트림에 브라운팩을 추가하면 오렌지빛이 도는 갈색 가죽과 하운드투스 체크 패브릭이 실내 곳곳에 적용된다. 의류나 액세서리에만 볼 수 있었던 체크 패턴이 자동차 시트나 도어 트림에 쓰이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개성의 시트로엥 답다.
그러면서도 제 본래 기능만 충실히 해내면 문제 없다는 듯 아날로그 계기판과 플라스틱 소재 위주의 대시보드와 실내 버튼 등에는 살짝 힘을 뺀 모습이다. 브라운팩을 선택하면 적용되는 가죽 시트는 아주 고급스럽진 않지만 오염 물질이 묻으면 쓱쓱 닦아낼 수 있는 부담없는 재질이다. 이염이나 주름 걱정 없이 편하게 사용하기엔 오히려 제격이다. 나머지 트림의 시트에는 모두 패브릭 소재가 적용된다.
시트로엥의 실내 공간은 늘 센스있고 영리한 아이디어로 가득하다. 시트로엥은 각 모델마다 가족 구성과 형태에 따라 시트 하단 서랍, 비행기 객실 스타일의 상단 수납 공간, 회전형 시트 등을 적용하고 있다. C3 에어크로스 역시 작지만 알찬 공간을 지녔다. 요즘 가구업계에선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변형하고 확장할 수 있는 모듈 가구가 유행이다. C3 에어크로스의 시트 활용도는 모듈가구와 비슷하다.
먼저 1열 동승석 시트가 완전히 접힌다. 2열까지 모두 접으면 트렁크에서 최대 2.4미터 길이의 짐을 실을 수 있다. 특히 서핑이나 스키 등 레저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기능이다. 단 1열 시트를 접어서 활용하려면 여러 명이 차를 이용하긴 어렵다. 1, 2인 가구의 라이프스타일에 알맞다. 2열 시트는 6:4로 접을 수 있고 슬라이딩과 등받이 각도 조절이 모두 가능하다. 트렁크는 기본 410리터에 트렁크 바닥을 낮추면 최대 520리터까지 늘릴 수 있다. 뒷좌석을 완전히 접으면 1289리터까지 늘어난다. 캠핑 테이블과 의자, 매트 등 가벼운 캠핑짐은 충분히 들어간다. 1열석 컵홀더의 부재가 아쉽지만 도어 포켓에 1.5리터 물병이 들어갈 만한 공간으로 대체 가능하다.
주행은 서울 성수동에서 경기 포천 백로주 캠핑장까지 왕복 120km 정도 달렸다. C3 에어크로스는 1.5리터 디젤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려 최고출력 120마력 최대토크 30.61kg.m를 발휘한다. 주행을 시작하면 작은 차체에 경쾌한 가속감과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일상 주행에서는 힘이 부족함을 느끼기 어려운 수준이다. 운전대는 가볍게 움직이는 편이며 조향 감각은 민첩하다. 다만 차체가 작은 데다가 디젤 엔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소음과 진동은 실내에 그대로 전해진다.
작고 높은 차체에도 승차감은 꽤 편안하다. 장애물을 만났을 때 불쾌한 움직임이 적다. 그동안 시승했던 소형 SUV 중 상위에 속한다. 편안한 승차감은 시트로엥이 모든 차량에서 추구하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C3보다 상위 모델인 C4나 C5에 들어간 프로그레시브 하이드롤릭 쿠션 서스펜션(시트로엥이 승차감을 위해 독자 개발한 서스펜션)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쇼파 쿠션같은 두툼한 시트가 편안한 승차감에 한 몫한다. 효율도 좋다. 서울과 포천을 오가는 동안 기록한 연비는 약 16km/l. 공인 연비(복합 14.1km/l (도심 13.4km/l 고속 15.1km/l)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 밖에 C3 에어크로스에는 30도 이상의 내리막에서 자동으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힐 디센트 어시스트와 다양한 도로 환경에 따라 구동 및 제동력을 조절하는 그립 컨트롤을 적용했다. 도심에서 잠시 벗어난 운전자의 상황을 고려한 깨알 기능이다. 다이얼로 5개 모드(일반, 눈길, 진흙, 모래, ESP 오프) 중 하나를 선택해 사용할 수 있다. 시승차는 1.5 샤인 트림에 브라운팩을 추가한 모델로 시트와 운전대, 대시보드에 갈색 가죽을 적용하고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2열 컵홀더가 추가된다. 가격은 3320만원이다.
도심 위주의 생활을 하면서 가끔은 멀리 떠나기도 하는, 1・2인 가구의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밀레니얼 세대에게 어울릴만한 개성 넘치는 선택지를 만났다. 광활한 공간과 첨단 사양 가득한 차도 물론 좋지만, 편안하면서도 개성 가득한 차를 만나보고 싶다면 시트로엥 C3 에어크로스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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