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메르세데스 벤츠는 ‘회장님 차’의 전형이었다. 2010년 독일 한 매체에 따르면 BMW의 평균 구매 연령이 44.7세, 아우디가 50.9세인 반면 벤츠는 56.1세 재규어 (56.5세) 다음으로 높았다. 당시 벤츠의 수장이었던 디터 제체는 벤츠에 젊은 감각을 불어넣기 위해 디자인 혁신부터 강행했다. 당시 39세 고든 바그너를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하고 A 클래스부터 S 클래스까지 새로운 디자인을 입히기 시작했다. 2013년엔 A 클래스를 젊고 파격적인 스타일의 해치백 형태로 바꿨으며 여성 소비자들을 겨냥해 소형 자동차 라인업을 대폭 강화시켰다. 그 결과 벤츠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호감을 브랜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해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벤츠를 타는 20~30대를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GLB 역시 젊은 감성을 내세우는 벤츠의 최신 SUV다. 콤팩트 오프로드 SUV가 지향점인 모델로 GLC와 GLE의 유선형 디자인과는 달리 직선을 많이 사용하고 살짝 각진 편이다. 닛산 큐브나 G 클래스와 같은 박스카 형태를 띠고 있는데, 귀여운 외모까지 더해져 미국에서는 GLB를 큐트 큐브라고 부르기도 한다. 벤츠는 여기에 AMG의 힘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탄생한 모델이 메르세데스 AMG GLB 35 4매틱이다.
생김새는 마음에 든다. GLB 일반 모델을 보면 마냥 귀엽기만 했는데 AMG의 손길을 입으며 스모키 화장을 덧댄 것 같다. AMG의 수직 바 13개를 세운 팬아메리카 그릴과 커진 스플리터 루프 스포일러, 듀얼 배기파이프, 19인 무광 휠 덕분에 인상이 한층 더 강렬하고 과격해졌다. 여전히 답답한 곳도 있다. 앞 범퍼 양쪽에 있는 공기 흡입구는 AMG가 아닌 일반 모델들과 동일하게 막혀 있다. 비록 35지만 AMG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조금 아쉬운 게 사실이다.
실내는 기존 벤츠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벤츠가 가지고 있는 고급스러움을 그대로 구현했다. 대시보드 위로 기다란 10.25인치 디스플레이가 놓였고 센터페시아에 터빈 모양의 둥근 송풍구가 자리했다. 운전대 뒤쪽으로 길쭉한 기어레버도 달렸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대신 AMG를 티내기 위해 운전대와 시트, 대시보드 도어에 빨간 스티치로 멋을 내고 안전벨트로 빨간색으로 덮었다. 콤팩트 SUV인데도 공간은 생각보다 여유롭다. GLB는 GLC보다 아래 등급이지만 공간이나 실용성을 따졌을 땐 GLB가 더 위라고 느껴질 정도다. 여유로운 공간은 넉넉한 헤드룸과 낮은 차체 높이에서 나오는데 차를 탔을 때도 좋지만 차를 타고 내릴 때 정말 편하다. 꼭 미니밴을 타는 기분이다.
실내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단점도 존재한다. 첫째는 소재다. 대시보드와 도어 안쪽에 스웨이드와 실버 무광 크롬을 꾸며 보는 눈이 즐겁지만 승객의 허리 아래를 보면 온통 플라스틱이다. 특히 칼럼식 기어레버와 글로브 박스는 운전자와 승객들의 손이 많이 가는 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아쉽다. 다음은 편의장비다. 미리 이야기하지만 이 차의 가격은 6940만원이다. 앞자리에 열선 시트가 있지만 통풍 시트가 없고 열선 스티어링휠도 없다. 뒷자리엔 통풍은 물론 열선 시트도 없다. 무엇보다 송풍구가 없다. 가격을 생각하면 많이 야속하다.
보닛 아래 들어간 AMG 35 엔진은 직렬 4기통 2.0리터 터보로 최고출력 306마력, 최대토크 40.8kg을 낸다. 여기에 듀얼클러치 8단 변속기가 맞물려 네 바퀴를 굴린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2초다. 윗급의 AMG 엔진을 생각하면 얌전한 편에 속하지만 그래도 도로 위에서 시원시원한 힘과 카랑카랑한 소리는 제법이다. 엔진 질감은 꽤나 매끈하다. 소음, 진동이나 회전 상승 속도를 생각하면 꽤나 박력이다. 가속 감각 또한 굉장히 활기차고.
GLB에는 전자식 제어 적응형 댐퍼가 달려 있어 속도를 올릴수록 서스펜션이 속도에 따라 단단해지면서 차체는 낮아지고 출렁이는 느낌도 줄어든다. GLB의 뒤쪽에 서브프레임 보강재까지 더해져 섀시 강성을 높여 불필요한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AMG에서 기대할 수 있는 날카로움으로 차체 움직임을 잘 제어할 수 있다. 주행의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승차감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평소의 승차감은 그리 나쁜 편이 아니다. 하지만 정지 상태 혹은 저속으로 달리다가 가속페달에 조금만 힘을 주면 잠시 기다렸다 앞으로 튀어나가는 터보 지체 현상이 눈에 띄게 발생한다. 패밀리카가 콘셉트인 GLB에게는 아킬레스건일 수밖에 없다.
GLB 35 4매틱은 앞차와 간격을 유지하면서도 멈췄다 출발하는 것도 가능한 액티브 디스턴스 어시스트 디스트로닉, 위급한 상황에서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아 완전히 멈추는 액티브 브레이크 어시스트,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넘으면 경고하는 액티브 차선 이탈 방지 패키지를 챙겼다. 그리고 일반 모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스스로 차선 가운데로 달리게 하는 준자율주행 장비까지 챙겨 장거리 주행에 대한 부담을 줄였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GLB 35 AMG의 가격은 6940만원이다. GLB 35 AMG와 똑같은 최고출력(306마력)을 발휘하는 미니 JCW 클럽맨이나 컨트리맨의 가격이 5000만원 후반에서 6000만 원 초반임을 고려한다면 가격이 높은 SUV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국내에 들어오는 GLB는 200d와 220, 250, 35 총 세 모델로 GLB 200d의 가격은 5270만원, 220은 5520만원 250은 6210~6370만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지난해 9월부터 올 7월까지 팔린 GLB의 판매대수는 4789대, 이중 250 판매량이 2915대로 약 60%를 차지한다. 그러니까 비싸서 안 팔리는 게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250 4매틱의 잠재구매자가 600만원 정도 더 얹어 GLB 35 AMG를 산다…. 꽤나 설득력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