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캐스트=김선관 기자] 스물두 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2002년식 쌍용 코란도를 탔다. 차를 탄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가질 그런 때였다. 하지만 길이라는 문제가 있었다. 내가 달리는 모든 곳이 초행길이고 간선도로나 순환도로에 대한 이해는 전무했다. 한 번은 서울 사당에서 노원으로 가는 길을 몰라 지하철 4호선 라인을 따라 운전한 적도 있었다. 1시간 20분이면 올 거리를 3시간 가까이 걸렸으니 말해 무엇할까.
그래서 용돈을 모아 가장 먼저 산 자동차 용품이 네비게이션이다. 목적지까지 가장 빠른 길을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네비게이션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었으니까. 네비게이션을 달면서 6개월에 한 번씩 해줘야 하는 일도 생겼다. 업데이트다. 과속카메라의 위치, 새로 생긴 도로 등을 업데이트하기 위해서 네비게이션 사설업체를 방문해 5000원을 지불한 기억이 있다.
2010년 이전엔 기존의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소프트웨어나 지도 정보를 업데이트하기 위해서 정비소나 네비게이션 사설업체를 방문하거나 운전자가 USB나 SD카드에 소프트웨어를 내려받아 차에 꼽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OTA를 활용한다. OTA는 Over The Air의 약자로 무선으로 언제 어디서든 자동차를 인터넷에 연결하면 업데이트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전자 제어장치 무선 업데이트다. 스마트폰 어플의 업데이트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자동차는 OTA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자동차의 경우 한정된 통신망을 통해 소프트웨어와 대용량 지도 데이터 등 막대한 양의 정보를 무선으로 보내려니 비용과 인프라 등 양산 적용에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운행 중인 상황에서도 배터리 방전이나 통신망 장애 등 안정성 확보 측면에서도 신경 쓸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통신망 서비스와 기술의 발달로 통신 비용 문제가 해결되면서 자동차에 OTA를 적용할 수 있었다.
자동차 OTA를 적용함으로써 자동차 업계가 누리는 혜택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악의적인 공격을 방어하고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해커가 PC나 스마트폰 등에 쓰던 방법을 차에 그대로 공격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새로운 공격 방법에 따라 매번 변하는 방어 방식을 업데이트를 해야 하는데 OTA가 아니고서는 대응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자동차 해킹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했다. 2015년 화이트 해커 두 명이 지프 체로키에 물리적인 접근 없이 원격으로 접속해 자동차와 라디오 앞유리 와이퍼를 마음대로 조종하고 차를 멈추게 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당시 FCA 그룹은 보안 취약을 이유로 지프 체로키 140만 대를 긴급 리콜했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관련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자동차 업계의 리콜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자동차 업체들의 비용 압박은 커지는 상황이다. 현재 자동차 관련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는 운전자의 방문이나 USB 배송 등으로 이뤄져 비용도 비용이지만 대응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자동차 관련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횟수나 비중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정된 인력과 공간으로 장시간 대기하는 사람을 뉴스에서 한 번쯤을 봤을 거다. 하지만 OTA를 활용하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리콜 관련 소프트웨어 업데이트할 때 따로 비용과 시간이 들지 않는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운전자가 업데이트 버튼을 클릭할 노동력뿐이다. 물론 클릭 없이도 가능하다.
여기에 빅데이터가 더해지면 OTA의 활용은 더욱 확대된다. 고객의 사용 패턴, 선호 기능 등에 대한 빅데이터를 구축, 이를 기반으로 고객에게 보다 편리한 기능을 맞춤형 그리고 실시간으로 제공할 수 있다. 단순히 자동차에 관련된 업데이트가 아닌 운전자의 라이프스타일까지 접근한다는 점에서 OTA의 활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는 OTA 적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SOTA(Software OTA)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보다 한층 진화된 FOTA(Firmware OTA)를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FOTA를 활용하면 업데이트만으로 브레이크 기능 조절, 운전자 보조 기능 개선, 자율주행 기능 등은 물론이고 미래차라고 일컫는 전기차의 배터리 용량 조작, 주행가능거리 설정 등까지 폭넓은 업데이트가 가능해진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에서 나아가 하드웨어까지 제어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이야기다.
해외 시장과 달리 OTA에 제한적이었던 국내 시간 역시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 지난해 6월 산업통상자원부 규제 샌드박스에 OTA가 추가되면서 승인을 받은 업체에 한해 2년간 한시적으로 서비스 운영이 가능해졌다. 현재 현대·기아차, 르노삼성차, 테슬라, 볼보, BMW, 메르세데스-벤츠, 포르쉐 등은 임시 허가를 받아 OTA 기술 적용이 가능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