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캐스트=김선관 기자]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다. 액체의 전해질을 리튬이온이 오가면서 전기 에너지를 만드는 방식이다. 하지만 배터리에 충격이나 손상이 발생하면 폭발이나 화재가 발생할 우려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반면, 고체의 전해질을 사용하는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단점을 보완하며 미래의 배터리 가운데 하나로 주목받는다. 1980년대 처음 제시됐지만 상용화되지 못하다 토요타가 2010년 황화물 전해질을 사용한 배터리 시제품을 공개한 뒤 연구가 눈에 띄게 늘었다.
전고체 배터리가 차세대 배터리로 각광을 받게 된 건 리튬이온 배터리가 액체 상태의 전해질을 사용하면서 생기는 문제 때문이다. 전해질은 온도 변화로 팽창하거나 외부 충격으로 새어 나오는 등 배터리가 손상을 입으면 폭발할 위험이 높다.
#전고체 배터리는 폭발하지 않는다
반면, 전고체 배터리는 구조적으로 단단하고 안정적이라 폭발이나 화재 위험과 거리가 멀다. 덕분에 안전과 관련된 부품을 줄이고 배터리 용량을 늘릴 수 있는 활물질을 더 채울 수 있다. 그만큼 공간 활용도와 에너지 밀도가 높다는 이야기다.
분리막도 필요하지 않아 얇게 만들어 구부리는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자동차 브랜드뿐 아니라 웨어러블 기기나 로봇, 드론 산업에서도 눈여겨보고 있다.
자율주행 확산도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이유 중 하나다. 자율주행이 고도화 될수록 데이터 처리에 필요한 전력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선 고용량 배터리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짧은 충전 시간도 전고체 배터리를 반기는 또 다른 이유다. 충전 시간은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구매할 때 가장 꺼려지는 원인이다. 보통 리튬이온 배터리는 80%까지 급속 충전하는 데 40분 정도 걸리는데 전고체 배터리는 5분이면 충분하다. 기존의 휘발유와 경유차의 주유 시간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이야기다.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가장 앞선 자동차 브랜드는 토요타다. 고체 전해질 소재 분야의 특허를 광범위하게 확보하고 고체 전해질 소재 제조 기술을 가지는 등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를 1000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
특히 전해질로 사용하는 황화물 관련 기술이 주를 이룬다. 최근 이와 관련된 성과도 나타났다. 지난 9월 7일 토요타는 전고체 배터리를 얹은 전기차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원래 프로토타입은 2020년 6월에 공개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도쿄올림픽이 1년 연기되면서 프로토타입 일반 공개 이벤트를 열지 않았고 2020년 8월 번호판을 취득해 여전히 테스트 중이지만 일부 문제로 인해 양산 일정은 언제가 될지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토요타가 생각하고 있는 전고체 배터리의 문제 가운데 가장 우려하는 점은 전고체 배터리의 수명이 짧다는 것. 원인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배터리의 충·방전을 반복하면 고체 전해질이 수축해 활물질 등과의 사이에 간격이 생긴다. 이로 인해 이온은 양극과 음극 사이를 통과하기 어려워 배터리의 열화를 촉진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수축되지 않는 고체 전해질의 재료를 새로 찾아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재료 찾아내 실용화까지 5년 이상 걸리는 것이 보통이니 토요타가 발표했던 2025년까지 전고체 배터리를 얹은 전기차를 양산하기는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2025년 하이브리드에 먼저 전고체 배터리 적용
대신 토요타는 현재 개발 중인 전고체 배터리를 전기차가 아닌 하이브리드에 먼저 적용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토요타가 출시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기존 목표대로 2025년 이내에 전고체 배터리를 넣는다는 입장이다. 토요타가 내세웠던 목표 시점은 동일하나 그 대상이 전기차에서 하이브리드로 바뀐 셈이다.
전기차 개발에서는 당분간 리튬이온 배터리를 개량하고 비용을 줄여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렉서스가 유럽에서 판매하고 있는 UX300e는 배터리 보증을 10년/100만 km에서 배터리 용량 70%를 보증한다. 토요타는 내년 6월에 론칭할 bZ4X 배터리 내구성을 10년/100만 km 사용 후에도 90%의 배터리 용량을 유지한다는 목표다. 게다가 배터리 비용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코발트와 니켈을 사용하지 않는 ‘더블레스’라는 새로운 전극재를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그럼 토요타는 왜 전고체 배터리를 얹을 대상을 전기차에서 하이브리드로 방향을 선회한 것일까? 토요타는 빈번한 충·방전이 필요한 하이브리드에 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이온의 움직임이 빠르다. 개발 중인 고체 전해질의 이온 전도도 역시 현재 양산 중인 리튬이온 배터리를 웃돈다. 게다가 하이브리드에 사용하는 전지 충전량의 범위가 작아서 배터리 열화 현상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과제가 남아 있지만 토요타는 하이브리드 용도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관심은 오직 토요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토요타와는 달리 다른 브랜드들은 여전히 전고체 배터리를 적용한 전기차로 회사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미국의 퀀텀스케이프, BMW 솔리드파워와 손잡고 전고체 배터리를 얹은 전기차를 2025~2026년에 출시할 계획이다.
국내 업체 중에는 삼성SDI가 가장 앞서 있다. 지난해 3월 삼성은 ‘석출형 리튬음극’을 적용해 전고체 배터리의 수명과 안전성을 동시에 높인 기술을 국제 학술지 에 발표했다. 이 기술을 활용하면 기존 전기차의 2배 수준의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 800km를 달성하고 재충전도 1000회 이상 가능하다. 게다가 지금까지 나온 전고체 배터리 중 가장 현실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전고체 배터리를 얹은 전기차 양산 단계는 2027년 이후로 예상된다.
sk.kim@autoca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