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전쟁이 벌어졌다. 발단은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선언이다. 이에 수에즈 운하에 대한 지분을 확보하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가 당시 국경과 관련한 여러가지 문제로 이집트와 갈등을 겪고 있던 이스라엘을 끌어들여 전쟁을 벌였다. 제2차 중동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기름값은 폭등했다. 당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전체 물량 중 절반이 석유였고, 유럽에서 사용하는 석유의 3분의 2가 수에즈 운하를 통해 보급됐기 때문이다.
석유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사람들은 조금 더 효율적인 자동차를 찾기 시작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연비 좋은 작은차 개발에 열을 올렸다. 이전에도 영국에서는 오스틴, 모리스, 스탠더드, 영국 포드 등이 소형차를 생산해서 판매하고 있었지만, 2차 중동전쟁 이후 이 시장은 더욱 커졌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 오스틴과 모리스의 합병으로 만들어진 BMC(British Motor Company)는 자동차 디자이너 알렉 이시고니스에게 초소형 자동차 제작을 의뢰했다. 주문 내용은 명료했다. 기름을 적게 먹고 성인 4명이 탈 수 있는 마이크로카를 만들어달라.
이미 모리스사의 마이너라는 소형차 개발 경험이 있던 이시고니스는 실내 공간 확보와 연비를 우선에 두고 설계하기 시작했다. 이시고니스는 계기판과 외장 패널, 문 손잡이를 없애버렸다. 엔진은 가로로 배치해 엔진룸 크기를 줄였다. 이렇게 절약한 공간은 1, 2열 승객 공간에 할애했다. 이렇게 나온 결과물이 바로 ‘오스틴 미니 세븐’과 ‘모리스 미니 마이너’다. 현재 클래식 미니로 불리는 그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름값은 안정화됐지만, 미니는 그 자체로 인기를 끌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미니 외에도 1950년대 이즈음 인기를 끌었던 이세타도 있다. 원래는 이탈리아에 위치한 이소 오토모빌이라는 회사에서 처음 제작했지만 BMW가 이세타 설비 장비와 소유권을 사들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대표 모델인 이세타 300은 2명이 탑승할 수 있는 작은 차체에 1기통 엔진과 수동 4단 변속기가 결합해 12마력을 발휘한다. 360kg의 무게로 리터당 약 30km의 연비를 낸다. 값비싼 휘발유값을 견디기에 최적이었다. BMW가 만든 이세타는 인기를 끌며 생산 기간에 총 16만1728대를 판매했다.
미니와 이세타, 피아트 500 등의 소형차가 유럽을 휩쓸 무렵 일본에서는 경자동차가 보급됐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당시 일본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대형차를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이 적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고 저렴한 운송 수단 지원을 위해 경자동차 규격을 제정했다. 이 무렵 스바루는 해당 규격에 맞춘 스바루360이라는 경자동차를 선보였다. 직렬 2기통 공랭식 356cc 엔진을 차량 뒤쪽에 얹은 4인승 차다. 1970년 생산을 중단할 때까지 엄청난 인기를 끌어 총 39만2000대를 팔았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크고 빠른 차가 인기를 끌었다. V8 대배기량 엔진에 번쩍이는 크롬 장식을 잔뜩 붙인 머슬카, 포니카 등으로 불리던 차다. 이 가운데 포드 머스탱은 1960대 초 시장에서 가장 인기를 끈 모델이었다. 이후 쉐보레가 경쟁모델로 카마로를 내놓기도 했다. 호화로운 차량들이 승승장구하던 미국 자동차 업계는 1987년 석유 파동이 일어나면서 타격을 입었다. 치솟은 기름값에 더이상 배기량 높은 차를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든 것. 이후 미국은 연비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그 때부터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무게를 줄이거나 엔진을 다운사이징해 연비를 줄이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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