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는 전쟁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1900년대 초 배럴당 원유가는 평균 2~3달러 수준이었다. 특히 1950년대부터는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 대유전이 발견돼 원유 공급 과잉사태가 일어나며 원유가의 하락이 이어졌다. 이에 이라크,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등 석유 생산 및 수출국은 원유가 하락을 막기위한 석유수출국기구 OPEC을 결성한다.
그러던 1973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제 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면서 유가가 치솟기 시작했다. 전쟁 시작과 동시에 이집트와 동맹국들이 친 이스라엘 국가들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해 석유 공급을 단계적으로 줄인 것이다. OPEC 역시 공급을 25% 줄이고 원유 가격을 기존 4배인 배럴당 11.65달러(현재가 약 55달러)로 인상했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이어지면서 실제 시장에는 3배 정도 높은 약 30달러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각국에서는 경제 혼란을 겪었다. 1974년에 들어서면서 석유가 부족해진 영국은 주 3회 전력 제한을 시작하고 유럽 각국에서는 비행기 및 페리 운항을 금지했다. 네덜란드는 전력을 배급하고 배당된 전력 이상을 사용하면 징역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에너지 절감정책을 시행하면서 일반인 대상 석유 공급을 20% 줄이고 경제 안정을 위해 인상을 제한했던 주요 10개 품목의 가격을 인상하기 시작했다. 이에 국내 물가 상승률은 52%에 달했으며 전 세계의 경기 침체가 이어졌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오일쇼크는 끝나지 않았다. 1978년 이란은 자국내 이슬람혁명을 겪으며 석유 생산량을 하루 600만 배럴에서 200만 배럴로 축소했다. 석유의 공급을 다시 시작했음에도 이라크와의 전쟁까지 이어지며 1차 오일파동 시기의 유가는 유지돼 혼란이 이어진 것이다. 경제가 다시 안정을 찾기 시작한 것은 공급량이 다시 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다.
2000년대 초반까지 배럴당 30달러를 유지하며 안정된 모습을 보였던 유가. 그러나 2000년대 중반에는 다시 유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특히 글로벌 경제 위기가 절정에 다다른 2008년에는 배럴 당 143달러를 기록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유가가 높던 시기였다. 그 후로도 유가는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2011년 리비아 내전으로 인해 생산의 차질이 생기면서 100달러를 돌파했다가 2014년 6월 WTI기준 배럴 당 107.26달러를 정점으로 떨어졌다.
이번 유가 폭등사태는 전쟁 및 경제 위기와 관련됐던 전과 조금 다르다. 코로나19 이후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원유에 대한 소비가 늘어난 반면 OPEC+가 추가 증산없이 속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폭등한 것이다. 여기에 대체제인 천연가스까지 가격이 상승하면서 일각에서는 연료 수요가 많은 겨울에 경제 혼란 사태가 다시 발생하는게 아니냐는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란 핵합의 수석 협상자인 알리 바게리 카니 이란 외무부 정무차관이 “우리는 11월 말 전에 협상을 시작하는데 동의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이란 핵협상이 11월말 전에 재개될 가능성이 재기됐으나 에너지 공급 부족 우려로 인해 지난 28일 기준 12월물 서부텍사스원위 가격은 전장보다 소폭 상승한 82.81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이란 핵합의는 2015년 미국을 비롯한 6개국이 체결한 합의로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valeriak97@autoca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