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캐스트=김선관 기자] 경차 소비자들의 가장 큰 고민은 ‘모닝 살까, 스파크 살까’가 아닐까.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아 레이도 있지만 판매량이 기아 모닝과 쉐보레 스파크에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최근 경차 시장을 뒤흔들며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와 같은 경차나 나타났으니, 바로 현대 캐스퍼다. 캐스퍼는 경형 SUV로 현대차가 2002년 아토스 단종 이후 19년만에 국내 시장에 내놓은 경차다.
1990년대 후반에 당시 현대그룹은 경형 SUV를 선보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IMF와 현대그룹 왕자의 난을 거치며 현대정공이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넘어가는 풍파 속에서 경형 SUV 프로젝트는 조용히 묻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SUV 열풍이 자연스럽게 경형 SUV에 대한 수요로 이어지게 되고 때마침 광주형 일자리 일환으로 광주글로벌모터스가 현대차그룹 관계협력사로 설립되면서 코드명 AX로 캐스퍼가 탄생했다. 국내 첫 경형 SUV다.
모닝과 스파크에서는 작은 차라는 강박관념이 있었는지 인상을 강하게 디자인했는데 캐스퍼는 둥근 LED 주간주행등과 무난하게 생긴 헤드램프 덕분에 귀여운 얼굴을 가졌다. 대신 옆은 부풀린 펜더와 높은 지상고로 역동성을 강조했으며 꽤나 각진 실루엣을 가지고 있다. 여느 경차와 마찬가지고 뒷문 손잡이는 윈도우 글라스 부분에 히든 타입으로 넣었다. 개인적으로 파라메트릭 패턴을 입힌 뒷모습이 인상적이다. 좌우 폭을 키운 와이드 테일램프는 보통 차체가 낮고 넓어 보이는 효과를 주지만 워낙 리어램프가 높이 달려 있고 너비도 넓지 않아 그 효과가 미미하게 다가온다.
캐스퍼의 길이, 너비, 높이는 3595mm, 1595mm, 1575mm이고 휠베이스는 2400mm이다. 다른 경차들과 길이와 너비는 같으며 높이는 모닝과 레이 사이다. 트렁크나 승객석 공간도 큰 차이를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1열 시트가 앞으로 완전히 접히는 폴딩 시트를 적용해 실내 공간 활용성을 높였다.
처음 현대차가 캐스퍼를 내세우면서 꺼내 든 키워드가 뜬금없이 ‘차박’이라서 조금 의아했는데 모두 폴딩되는 시트를 보고서야 해소됐다. 시트와 시트 사이의 공간이 있어 조금 불편하지만 인터넷에서 판매하고 있는 차박용 매트를 구매한다면 꽤 안락한 공간이 만들어 질 거다. 모든 시트가 풀 폴딩되는 것은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경차 중 유일하며 레이는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과 뒷시트만 폴딩된다.
실내는 조금 장난감 같다. 대시보드와 송풍구 형상을 반원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눈에 띈다. 보통 경차들은 구성은 단출하게 하는 반면 캐스퍼는 그 속에서도 멋과 실용성을 챙겼다. 변속기 주위의 오렌지색으로 멋을 내거나 대시보드와 조수석 글러브박스 사이에 수납 공간을 만들어 스마트폰이나 지갑 등을 넣을 수 있다. 다만 바닥 쪽에 고무 패드가 없어 차체에 따라 이리저리 왔다갔다하지만.
시승차는 인스퍼레이션 트림이기 때문에 캐스퍼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옵션을 만날 수 있다. 1열 시트에 열선 기능이, 운전석은 통풍시트까지 들어갔으니 말해 무엇하랴. 개인적으로 운전대와 시트를 뒤덮은 인조가죽의 느낌이 상당히 좋다. 물론 천연가죽보다 퀄리티는 떨어지지만 몸이 닿았을 때 그 느낌과 몸을 지지하는 기분이 꽤나 인상적이다. 시트 위에 새겨진 ‘CASPER’ 보기에도 깔끔하다. 과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대시보드 중앙에 자리잡은 8인치 디스플레이는 내비게이션과 블루링크는 물론 현대 카페이도 가능하다. 게다가 경차인데 품은 스피커가 6개나 된다. 이렇게 풍족한 경차는 난생 처음이다.
뒷좌석은 좁다. 높이가 다른 경차보단 높아 머리 공간은 그나마 낫지만 타이트한 무릎 공간은 똑같다. 다만 앞시트 아래를 깊게 파 이를 어느 정도 상쇄했다. 뒷시트는 리클라이닝이 가능하고 앞뒤로 움직이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에 따라 뒷좌석 공간과 트렁크 공간을 조절해야 할 거다.
캐스퍼는 3세대 모닝에 적용된 H2 플랫폼을 개선한 버전을 공유한다. 시승차는 100마력을 내는 직렬 3기통 1.0리터 터보 GDI 엔진이 들어가며 엔진과 맞게 기어비와 내구성이 조정된 4단 자동변속기가 맞물린다. 엔진 회전수가 2000rpm을 넘어서부터 큰 소음과 진동이 발생하지만 경차를 타본 사람들은 안다. 이 정도 소음과 떨림은 어느 경차에서나 발생한다. 터보 지체 현상도 아주 없진 않다.
경형 SUV라고 하지만 주행 품질은 단단히 조여진 느낌이다. 서스펜션도 상당히 단단하고 조향 감각도 예민하고 민첩하다. 다만 코너를 돌아나갈 때 다른 경차에 비해 차체가 높아 쏠림 현상이 발생하면서 차체 자세가 조금씩 흐트러지곤 한다. 과속방지턱을 넘는 것조차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다. 그래도 노면을 확실히 밟아가는 접지력은 훌륭하다. 차체 스타일에서 오는 주행의 단점은 어느 정도 보완한다.
캐스퍼의 진짜 주행 재미는 바로 도심을 요리조리 빠져나갈 때다. 회전 반경이 짧아 경쾌하고 재미있으며 실용적이다. 하지만 고속으로 넘어갔을 때는 답답함이 다가온다. 엔진을 쥐어짜는 맛은 좋으나 그와 수반되는 소음과 진동은 운전자의 주행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그래도 섀시의 강성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오히려 그 강성이 남아돈다는 느낌이다.
캐스퍼는 가격이 공개되자마자 비싼 가격으로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경차 풀옵션 모델이 2000만 원이 넘으니 그랬을지도 모른다. 2000만 원대 캐스퍼 시승차를 탄다고 하니 <오토캐스트> 기자뿐 아니라 지인들까지도 납득이 가능하냐고 물어볼 정도다. 하지만 나 하나의 의견이 중요한 게 아니다. 캐스퍼는 현재 사전예약은 2만5000대를 달성하면서 현대차가 계획했던 연간 판매량 1만2000대를 2배 이상을 판매하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반응이 지금의 캐스퍼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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