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캐스트=김선관 기자] “이게 내가 알던 지프라고?” 얼마 전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의 영상 촬영을 진행하던 이다정 기자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생각하는 지프는 상남자 그리고 투박함의 상징이었다. 고급스럽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게 바로 지프의 멋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만난 지프는 달랐다. 내가 지금껏 알던 지프가 이렇게까지 고급스러웠나 생각해보니 지프의 어떤 모델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랜드 체로키’ 이름 뒤에 붙은 ‘L’이 롱보디를 의미하지만 이상하게 럭셔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랜드 체로키는 지프의 뒷바퀴굴림 SUV다. 중형 SUV 체로키의 후속으로 개발됐지만 지프는 기존의 체로키를 그대로 판매하는 대신 앞에 ‘그랜드’라는 이름을 붙여 한 단계 윗급의 SUV로 출시됐다. 직전 세대인 4세대까지는 지프의 플래그십이었지만 이번 세대부터는 아니다. 1990년 단종했던 왜고니어를 부활시키며 그랜드 체로키 윗급으로 포지셔닝했기 때문이다. 신형 그랜드 체로키는 숏보디와 롱보디로 출시됐지만 국내에는 롱보디 모델만 들어온다. 길이가 무려 5220mm나 돼 지프는 여기에 3열 시트를 붙여 역사상 두 번째로 6, 7인승 모델로 출시했다. 기존과 달리 3열을 선택한 것은 포르 익스플로러, 링컨 에비에이터, 폭스바겐 아틀라스 등의 SUV와 제대로 경쟁하기 위해서다.
외관은 전보다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바뀌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샤크 노즈로 된 그릴과 옆으로 날렵하게 생긴 헤드램프, 뒤로 갈수록 올라가는 윈도우 라인, 그리고 외관에 그어진 또렷한 라인들이다. 개인적으로 이전보다 이번 얼굴이 훨씬 마음에 든다. 이전 모델의 밋밋한 인상은 거대한 덩치에는 조금 어울리지 않았다. 뒷모습 역시 한층 단단하고 안정적인 느낌이다. 테일램프를 옆으로 길게 빼고 모서리를 바짝 세웠다. 사이드미러에서 테일램프가 보일 정도다.
이전엔 외관에서 투박함이 보였는데 지금은 세련됨이 훨씬 더 부각됐다. 이렇게 세련미를 강조한 건 이전과 달라진 SUV 시장의 요구 때문이다. SUV라고 해서 남성미가 부각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3열이 있는 도심형 SUV를 찾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건 바로 SUV의 투박함이 아닌 세련된 이미지다.
실내의 변화는 완전 변경 수준을 뛰어넘는다. 이전 그랜드 체로키에겐 미안하지만 두 세대는 가뿐히 뛰어 넘은 것 같다. 대시보드와 운전대 등에 월넛 우드와 가죽을 사용할 뿐 아니라 가죽 위에는 스티치로 멋을 냈다. 게다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소프트웨어를 신형으로 완전히 바꾸며 고급스러움과 첨단 기술을 모두 담아냈다. 다만 아쉬운 건 센터 디스플레이 아래로 쓰인 하이그로시 장식이다. 아우디의 것처럼 지문이나 실내 먼지가 남진 않지만 주변 장식 등을 고려해봤을 때 저렴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햇빛에 반사가 돼 운전자의 눈을 비춰 시야를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시트 구성은 오버랜드 7인승, 그 위급인 서밋 리저브는 6인승으로 시승차는 서밋 리저브가 제공됐다. 2·2·2 구성으로 2열 시트가 독립시트로 구성돼 가운데 공간이 있어 3열로 드나들기 편하다. 또한 양쪽 벽에 3열 전용 송풍구와 스피커, 컵홀더도 있다. 공간도 넉넉하다. 1~2열 탑승자가 조금씩만 양보하면 성인이 앉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리고 2열 시트보다 3열 시트가 높게 위치해 답답하지 않은데 파노라마 선루프와 커다란 쿼터글라스도 큰 역할을 한다.
실내 옵션 중 가장 특징적인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맥킨토시다. 맥킨토시는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로 자동차에서는 그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다. 10인치 서브 우퍼를 포함해 곳곳에 19개의 스피커가 멋진 소리를 낸다. 소리 좀 낸다는 볼보 XC60의 바워스앤윌킨스나 아우디 A8의 뱅앤올룹슨과 비교했을 때 한음 한음 선명하게 꽂아주는 맛은 없지만 저음과 중음에서의 풍부한 소리는 아주 제법이다.
이전과 같이 V6 3.6리터 가솔린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의 조합이다. 개발한 지 10년이 넘은 엔진이지만 꾸준히 개선한 덕분에 크게 흠잡을 곳 없는 성능(최고출력 286마력, 최대토크 35.1kg·m)과 복합연비(리터당 7.9킬로미터)를 낸다. 움직임도 경쾌하다. 가속페달 위에 올려진 발에 힘을 주면 앞머리가 움찔거리며 튀어나간다. 게다가 안정적이다. 길이는 5미터가 넘고 무게 역시 2톤이 넘지만 무게 이동을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전달하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다.
인상적인 건 승차감이다. 그동안 지프가 만든 도심형 SUV에 대해서는 오프로더만큼 확신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승차감이 정말 빼어나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에어 서스펜션의 역할이 크다. 요철이나 과속 방지턱에서 부드럽게 충격을 흡수하며 달리는 감각은 예상을 뛰어넘는 고급스러움이다. 그러면서도 운전대를 돌리면 앞바퀴 접지력이 좋아 앞머리가 명료하게 회전한다. 그랜드 체로키 L에게 에어 서스펜션은 선택 아닌 필수다. 물론 미국과 달리 국내에 들어오는 모든 그랜드 체로키엔 에어 서스펜션이 기본으로 들어간다.
3열이 있는 도심형 SUV 시장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지프는 내년에 3열이 있는 왜고니어를 국내에 출시할 계획이기 때문에 그의 첨병을 할 그랜드 체로키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실 그동안 지프가 도심형 SUV에서 눈에 띈 건 소형 SUV인 레니게이드뿐 중형 이상의 크기에선 큰 힘을 쏟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그랜드 체로키는 지프가 제대로 칼을 간 모습이다. 경쟁자들과 같은 선상에 두고 꼼꼼히 따져보면 분명 이만큼 상품성이 고른 3열 SUV가 없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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