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캐스트=김준혁 모빌리티 저널리스트] 장거리 여행용 모터사이클의 필요 조건은 많다. 예를 들어 장시간 바람을 막아줄 공력 성능, 몸의 피로를 줄여줄 안락한 승차감, 용량이 넉넉한 연료탱크, 많은 짐을 실을 수납공간 등이다. 물론 이런 것들을 갖추지 않더라도 장거리 여행은 가능하다. 다만 그 과정이 불편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BMW 모토라드의 투어링 모터사이클, R 1250 RT는 장거리 여행의 완벽한 동반자다. 앞선 필요 조건 외에도 여러 장점을 더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R 1250 RT는 주행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인상적이다. 한눈에 봐도 R 1250 RT는 크다. 그리고 묵직하다. 엔진부터 배기량이 1254cc인 수평대향 2기통으로, 소위 말하는 ‘오버리터’ 사양이다. 구동계는 체인보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샤프트 방식이다. 그래서 공차중량이 279kg에 달한다.
그런데 주행을 시작하면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이지 놀랍도록 가볍다. 심지어 사뿐한 느낌마저 든다. 달리기 전에는 부담감이 큰데, 막상 달리기 시작하면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수평대향 엔진이 기본적으로 낮게 위치하면서 무게중심이 차체 중앙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R 1250 RT에는 그 이론을 뛰어넘는 가벼움이 존재한다.
크기와 무게에 대한 부담감이 사라지니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솟는다. 그대로 스로틀을 감아 R 1250 RT와 하루를 신나게 보냈다. 정신을 차려보니 커다란 10.25인치 계기판에는 주행거리 349km가 찍혀 있었다. 하지만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소유한 네이키드 모터사이클로 달렸을 때와는 하루의 끝이 달랐다.
이유가 있었다. 공력 성능 덕분이다. 여기엔 기능성에 바탕을 둔 앞모습 디자인이 큰 역할을 한다. 페어링의 면적이 꽤나 넓어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완벽하게 차단한다. 인상적인 것은 윈드실드 높이에 따른 R 1250 RT의 성격 변화다. 전동식 윈드실드를 가장 높게 설정하면 바람을 헬멧 위로 자연스럽게 흘려 보낼 수 있다. 몸을 향해 들이치는 바람이 거의 없는 탓에 안락한 주행이 가능하다. 반대로 윈드실드를 내리면 스포티한 기분이 든다. 상쾌한 바람이 상체로 불어와 분위기를 전환하며 달리는 재미를 더한다.
R 1250 RT의 디자인은 이 커다린 페어링과 윈드실드가 이끈다. 페어링 곳곳에 더해진 날카로운 선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풀 LED로 눈꼬리를 올린 헤드램프는 역동적인 느낌을 더한다. 이 때문에 자칫 시각적인 무게 중심이 앞쪽으로 쏠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 좌우 각각 용량이 약 30리터인 사이드 케이스가 뒤쪽에 더해져 시각적인 균형감을 유지한다.
R 1250 RT로 종일 달리고도 피곤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승차감 덕분이다. 주행 모드가 로드일 땐 승차감이 말랑말랑하다. 상투적인 표현에 과장을 조금 보태면 구름 위를 떠가는 것 같다. 도로 위 자잘한 요철, 심지어 맨홀을 만나도 몸으로 전달되는 충격이 거의 없다. 그저 앞뒤 바퀴만 위아래로 사뿐히 움직일 뿐이다.
이 때,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키면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가 펼쳐진다. 앞선 차 또는 모터사이클과의 간격, 그리고 속도를 R 1250 RT 스스로 유지하는 상황에서 라이더가 할 일은 왼발로 기어를 바꿔주는 것뿐이다. R 1250 RT는 기어가 바뀌는 감각마저 매끈하고 부드럽다. 마치 R 1250 RT를 구성하는 모든 부품과 부품 사이에 말랑말랑한 완충재를 넣은 것 같다.
주행 모드를 로드에서 다이내믹으로 바꾸면 느낌이 조금 달라진다. 한없이 부드러웠던 앞뒤 댐핑에 긴장감이 더해진다. 그래서인지 코너에서의 움직임도 차이가 있다. 노즈 다이브와 피칭이 확실히 줄어 불안함이 덜하다. 코너 정점에 이르는 순간, 커다란 무게와 덩치로 인한 한계치가 갑자기 두드러지긴 한다. 하지만 끌 수 없도록 설계된 각종 전자장비가 든든하게 지켜준다. 어차피 R 1250 RT로 격하게 달릴 일은 많지 않다.
다이내믹 모드에서는 무엇보다 엔진 반응이 한결 날카로워진다. 기본적으로 R 1250 RT의 수평대향 엔진은 저회전 중심 설정이다. 14.6kg·m의 최대토크가 6250rpm에서 나오지만 이미 12.2kg·m를 웃도는 두툼한 토크가 3000rpm에서 대기 중이다. 그래서 엔진회전수를 조금만 올려도 치고 나가는 맛이 좋다. 다이내믹 모드에서는 이런 느낌이 강해져 엔진회전수를 높게 유지하고 싶어진다. 최고출력 136마력이 발생하는 시점인 7750rpm으로 회전수를 높여도 수평대향 엔진은 전혀 신경질적이지 않다. 서스펜션이나 변속기만큼 R 1250 RT의 엔진 또한 말랑말랑하다.
장거리 여행을 위한 모터사이클이라는 기준만 놓고 보면 R 1250 RT에서 단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전체적으로 너무 부드럽고 말랑한 탓에 재미와 스릴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게 단점일 수는 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수백km를 달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는 단점이 아닌 의도적인 설정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R 1250 RT의 단점은 의외로 다른 곳에 나타난다. 바로 새로운 디지털 계기판이다. 자동차의 그것에 버금가는 커다란 크기와 화려한 그래픽 때문에 계기판에 탑재된 각종 기능을 자꾸만 만지고 싶어진다. 그런데 의외로 인터페이스가 직관적이지 않다. 예컨대 추운 날 장거리 여행의 필수품인 열선 그립과 시트 기능을 사용하고 싶어도 거쳐야 할 과정이 많다. 그래서 왼쪽 페어링에 네 개의 즐겨찾기 버튼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국내에서는 내비게이션 기능을 쓸 수 없기에 대형 계기판의 활용도가 크게 줄어든다. 하지만 R 1250 RT의 압도적인 편안함 앞에서 이런 단점은 쉽게 잊혀진다. 그만큼 장거리 여행용 모터사이클로서 R 1250 RT가 지닌 가치는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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