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캐스트=김선관 기자] 지난 1월 11일 제네시스가 G90의 미디어 시승 행사를 가졌다. G90은 현대 에쿠스에서 시작된 제네시스의 기함으로 등장 때부터 큰 인상을 남겼다. 원래 현대차의 기함은 주로 국내에서만 판매를 했었는데, 이런 모습이 글로벌 판매 5위 회사라는 타이틀이 조금 무색하기도 했다. 물론 전 세계 프리미엄 대형 세단 시장의 벽은 높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그래서 현대차는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분리하고 합리적인 고급스러움을 내세우며 시장을 공략했다. 그러면서 이름도 EQ900에서 G90으로 제대로 된 이름을 붙였다. 이는 단순 개명이 아니다. 국내에 국한되는 에쿠스가 아닌 전 세계에서 다른 기함들과 경쟁하는 G90이 되겠다는 일종의 포부를 밝힌 셈이다.
신형 G90은 다른 제네시스와 모델과 마찬가지로 두 줄의 헤드램프 라인과 크레스트 그릴이 들어가는데 이 오브제가 합쳐서 제네시스 엠블럼을 형상화한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보닛과 펜더를 하나의 패널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이를 보통 크램셸 보닛이라고 하는데 애스턴마틴의 여러 모델에서 자주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패널 사이의 이음새를 최소화해 시각적으로 심플하고 간결한 효과를 줄 수 있다. 참고로 G90의 클램셸 보닛은 글로벌 양산차 중 가장 크다.
뒷모습 역시 제네시스 디자인의 핵심 요소인 두줄 리어램프가 들어간다. 이전과 다른 게 있다면 리어램프가 트렁크에 따라 길게 이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사이에 제네시스 레터링 엠블럼을 집어넣었다. 사실 G90이 처음 나왔을 때 가장 아쉬웠던 게 바로 이 레터링 엠블럼의 서체였다. 보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고 브랜드 고유 서체와는 달라서였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기함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세세하게 관리해 브랜드 이미지를 통합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가장 기본인 브랜드 이름 서체를 옆으로 길게 늘려 넣었다. 다른 모델에도 동일한 서체 엠블럼이 들어갔지만 여전히 납득하기가 어렵다.
역시나 인상적인 건 다이내믹한 옆모습이다. 이전에는 윈도우 아래 라인아 단순한 일직선이었는데 신형은 2열 윈도우부터 위를 향해 오른다. 게다가 보닛에서 시작된 라인이 루프를 거쳐 트렁크 끝까지 이어지는데 일반 세단의 라인이라기보다 쿠페 라인 같다. 도어 손잡이 위쪽에 있던 벨트라인을 손잡이까지 내리면서 차체가 더 안정적이고 균형감 있는 모습이다.
실내는 기함답게 굉장히 고급스럽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요즘 트렌드를 따라 센터 송풍구 사이에 있던 아날로그 시계를 없앴다. 송풍구가 있는 듯 없는 듯 배치했고 그 아래에는 공조 장치가 그대로 들어간다. 실내에선 도어 손잡이는 보이지 않으며 모두 버튼으로 도어를 열고 닫을 수 있다. 오디오도 달라졌다. 원래 G90에는 렉시콘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엔 뱅앤올룹슨을 선택했다. 그리고 세계에선 처음으로 버추얼 베뉴를 적용했다.
시승차엔 3.5리터 터보 엔진이 들어간다. 이전에 있었던 3.3리터 터보 엔진과 3.8리터 터보 엔진 5.0리터 자연흡기 엔진은 이제 G90에서 만날 수 없다. 신형 G90엔 이제 일반 모델에서는 3.5리터 터보 엔진을, 그리고 롱휠베이스 모델에서는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곁들어진 3.5리터 터보 엔진이 들어간다. 3.5리터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380마력(5800rpm), 최대토크 54.0kg·m(1300~4500rpm)를 발휘한다. 여기에 8단 자동변속기가 짝을 맞추며 네 바퀴를 모두 굴린다.
엔진은 회전 질감이 매끄럽고 부드럽다. 특히 소음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기함다운 세팅이다. 5미터가 넘는 거대한 크기지만 코너를 돌아나가거나 유턴을 할 땐 회전 반경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뒷바퀴 조향 시스템을 얹은 덕분이다. 저속으로 달릴 때는 뒷바퀴를 앞바퀴와 반대로 조향에 회전 반경을 줄이고, 고속으로 달릴 때는 같은 방향으로 조향해 차체 미끄러짐을 줄이고 승차감을 챙긴다. 이제 뒷바퀴 조향은 5m가 넘는 대형 세단에게 이젠 선택 아닌 필수다.
대형 세단이라 묵직한 주행 감각을 기대했는데 예상외로 가볍다. 노면을 꾹꾹 누른다는 느낌보단 노면 위를 부유하는 느낌이다. 노면 충격이나 소음을 굉장히 잘 걸러낸다. 특히 스프링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댐퍼가 훌륭하다. 도로의 맨홀 뚜껑이나 도로 사이를 잇는 이음새를 넘어가는 감각이 굉장히 매끄럽다. 요철 구간을 지날 때도 마찬가지다. 노면에서 발생하는 충격이 타이어와 서스펜션, 시트에서 흡수해 운전자에게 전달되는 양이 거의 없다. 노면 소음을 걸러내는 것도 일품이다. 국산차에서 이렇게 편하고 안락한 차는 없었다.
안전 사양을 보면 대형 세단의 절대 강자라고 불리는 S 클래스에 절대 꿀리지 않는다. 수준 높은 준자율주행 기능을 품었다. 내비게이션과 연계된 준자율주행 기능은 과속카메라 위치를 파악해 부드럽게 속도를 높이고 줄인다. 브랜드 최초 적용도 많다. 광각 카메라 기반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는 초음파 센서와 더불어 광각 카메라를 이용해 주차선을 인식하고, 직접식 그립 감지 시스템은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는 면적에 따라 측정되는 전류의 크기를 감지할 수 있다. 그런데 직접식 그립 감지 시스템은 운전자가 운전대를 가볍게 터치하는 것만으로 준자율주행 관련 일부 경고음을 쉽게 해제할 수 있다는 건데 과연 이게 안전사양인지는 의문이다.
신형 G90 일반 모델은 9100만 원, 롱휠베이스는 1억6700만 원부터 시작한다. 생각보다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 하지만 프리미엄 대형 세단 시장에서 가격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가격보단 브랜드 가치가 주는 오너의 만족감이 최우선이다. 제품보단 명품을 선호하는 경향과 비슷하다. G90은 제품 자체로 보면 그 수준이 굉장하다. 문제는 브랜드의 가치다. 다른 브랜드에 비해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인식이 아직은 희미하다. 과연 제네시스는 적게는 30년, 길게는 100년이 넘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가치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 도약의 시작이 G90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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