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트래버스는 북미 시장에서 준대형 SUV로 취급 받지만 기준이 다른 국내 시장에선 대형 SUV로 구분된다. 대형 SUV답게 크기가 압권이다. 길이, 너비, 높이는 5230, 1780, 2000mm고 휠베이스도 3m가 넘는다. 국내에서 가장 잘 팔리는 대형 SUV 현대 팰리세이드보다 길이는 220mm, 휠베이스는 1730mm 긴 크기다. 그만큼 공간도 넉넉하다. 트래버스의 실내 공간은 광활할 정도다. 룸미러로 뒤를 본 기분이 굉장히 묘하다. 이정도로 깊은 SUV를 탄 적이 있었나 싶다.
실내는 이전 모델과 큰 차이가 없다. 전형적인 투박한 미국차다. 트래버스를 타면 꼭 10년 정도 과거를 돌아간 기분이다. 최근 출시한 국산 SUV의 디자인과 기능들이 화려해 상대적으로 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실내에서는 매력적인 부분을 찾기가 힘들다. 시승차가 최상위 트림인 하이컨트리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활용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버튼들이 직관적이고 버튼 간 구성이 좋다.
바뀐 계기판은 상당히 반갑다. 계기반은 3개의 원으로 구성돼 있는데 왼쪽부터 타코미터계 속도계, 그리고 나머지는 전압과 온도, 유류 잔여량이 들어간다. 전보다 해상도가 높고 크기도 큼지막해 전보다 시인성이 좋다. 시트 구성은 2·2·3으로 2열은 독립 시트라 편하고 3열로 드나들기도 쉽다. 2~3열 시트를 모두 접으면 양문형 냉장고도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광활한 짐 공간이 펼쳐진다. 왜 레저를 즐기는 아빠들이 트래버스를 즐겨 찾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보닛 아래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최고출력 314마력, 최대토크 36.8kg·m를 내는 V6 3.6리터 엔진이 들어간다. 엔진 회전 초반엔 살짝 소음이 있지만 속도가 올라가도 급격하게 시끄럽거나 진동이 실내로 들이치는 경우는 없다. 저속이든 고속이든 트래버스는 속도와 상관없이 움직임이 운전자의 예상을 고스란히 따르고 앞뒤 바퀴 움직임 조화도 좋다. 그리고 끈끈하게 노면을 붙잡는 느낌도 한결같다. 그래서 큰차를 운전하는 게 그리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
섀시 강성도 정말 좋다. 대형 SUV같은 경우 코너를 돌아나갈 때 생기는 차체 쏠림 현상이 상당한데 트래버스는 좀 덜하다. 쉐보레 홍보 담당자에 따르면 이전 트래버스는 서스펜션을 오프로드용으로 세팅한 반면 이번에는 좀 더 온로드로 맞춰 서스펜션을 조였다고 한다. 직접적인 비교한 게 아니라 명확하게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다른 차에 비해서 차체 쏠림 현상이 덜한 건 사실이다. 코너를 도는 내내 일관된 자세를 유지한다.
이번 트래버스의 진짜 변화는 편의 장비의 업그레이드다. 이전까진 설정한 속도로만 달릴 수 있는 그냥 크루즈 컨트롤이 들어갔는데 이번엔 주행 속도를 설정하면 앞차와의 차간 거리를 자동으로 조정하며 정차와 재출발 기능까지 있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 들어간다. 이외에도 네 대의 카메라로 차량 외부를 360도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서라운드 카메라와 무선으로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에 자동으로 연결되는 무선 폰 프로젝션도 기본으로 들어간다. 물론 요즘 출시된 차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것들이지만 이전 트래버스를 생각하면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쉐보레는 이번 트래버스를 선보이며 하이컨트리 트림을 추가했다. 하이컨트리는 쉐보레의 대형 SUV와 RV 라인업에 적용되는 브랜드 최고등급이다. 하이컨트리의 가격은 6430만 원이다. 6000만 원이 넘는 SUV를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의문이지만 쉐보레에선 “이전 모델 판매량을 보면 상위 모델 판매가 주를 이뤘다”며 “고급 옵션을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들을 위해 최상위 트림을 가지고 왔다”고 설명했다.
다른 트림도 이전 세대보다 가격이 올랐다. 이전 레드라인의 가격인 약 5500만 원과 비교해 신형의 레드라인 가격은 6099만 원으로 이전보다 600만 원 비싸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맞물려 가격이 오른 것일 텐데 공간과 가성비를 앞세우고 현대 팰리세이드와 포드 익스플로러 사이를 절묘하게 공략해 시장을 확장했던 이전 트래버스를 생각하면 사뭇 아쉽다.
대신 쉐보레는 높아진 가격에 맞춰 쉐보레 프리미엄 케어 서비스를 트래버스에 확대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트래버스 오너는 사전 예약 없이도 편리하게 정기점검과 소모품 교체 서비스를 받을 수 잇는 익스프레스 서비스와 직접 서비스 센터를 방문하지 않아도 고객이 원하는 장소로 차를 인수한 수 수리가 끝나면 다시 원하는 장소로 보내주는 픽업 딜리버리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프리미엄 서비스 제공으로 높아진 가격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sk.kim@autoca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