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 생각은 2박 3일 동안 아프리카 트윈과 약 1100km의 여정을 보내며 완전히 달라졌다. 혼다가 클러치 조작을 통한 오프로드에서의 섬세한 움직임과 스포티한 주행 감성을 포기하고 무게 증가까지 감수하면서 어드벤처 장르에 DCT를 채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우선 편안함을 얻었다. 아프리카 트윈 스스로 변속을 수행하기 때문에 부담감과 피로감이 크게 줄어든다. 이 같은 특징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에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다. 아프리카 트윈의 공차 중량은 250kg으로 결코 가볍지 않다. 시트 높이도 870mm(850mm로 조절 가능)로 꽤 높은 편이다. 때문에 도심에서 다루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 같은 어려움은 DCT 하나로 모두 해결된다. 클러치 조작과 변속을 할 필요 없이 오로지 균형을 잡는데 모든 감각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DCT 조작의 이질감을 극복한 뒤에는 키 큰 스쿠터를 타는 느낌으로 도심을 휘저을 수 있다.
편안함은 1000km 이상 장거리 주행에서도 빛을 발한다. 애초에 왼손과 왼발을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달려도 피곤하지 않다. 여기에 라이더의 피로를 줄이고 편안함을 극대화 할 여러 장비를 갖추고 있다. 대표적인 게 아프리카 트윈 어드벤처 스포츠 ES DCT의 이름, ES에서 알 수 있듯이 전자식 서스펜션(Electronic Suspension)이다. 아프리카 트윈의 전자식 서스펜션은 투어/어반/그래블/오프로드, 네 가지 주행 모드에 따라 감쇠력이 달라진다.
발 밑에서 전자식 서스펜션이 안락함을 보장한다면 머리 맡에선 긴 윈드스크린이 제 역할을 해낸다. 5단계로 높이를 조절할 수 있지만 기본 높이로 두어도 헬멧 위로 바람을 살짝 흘려 보낼 만큼 방풍 성능이 뛰어나다. 윈드스크린을 가장 높게 설정할 때는 상체로 향하는 바람이 거의 없어 덥기까지 하다.
아프리카 트윈은 안락한 투어러의 모습을 보이다가 스위치 조작 한 번만으로 스포티한 성격을 드러낸다. 이 때도 DCT가 큰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속도를 올리는 과정에서 상향 변속이 일품이다. 기본 모드인 D에서는 한 박자씩 빠르게 상향 변속을 수행해 연비 향상과 안락한 크루징을 돕는다. 반대로 스포티한 S 모드에서는 적극적으로 엔진을 돌린다. 스로틀을 조금만 적극적으로 감아도 DCT가 라이더의 의중을 파악해 엔진 회전수를 최대토크가 나오는 6250rpm를 넘겨 7000rpm까지 끌어올린다.
이 순간만큼은 라이더가 직접 변속을 하는 것보다 정확하고 빠르다. 덕분에 스로틀만 감고 있으면 병렬 2기통 1084cc 엔진이 만드는 102마력의 최고출력과 10.7kg.m의 최대토크를 뛰어 넘는 가속력을 맛볼 수 있다. 변속 과정이 너무나도 깔끔하고 완벽해 250kg의 공차 중량도 잊을 정도다.
다만, 어느 정도 가속이 이뤄진 후 재가속을 원할 때는 DCT의 한계가 엿보이기도 한다. 스로틀을 아무리 세게 비틀어도 변속기를 아래로 적극적으로 내리지 않는다. 상향 변속 때와 달리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때를 위해 핸들바 왼쪽에 검지와 엄지로 각각 조작할 수 있는 상향 및 하향 변속 버튼이 마련돼 있지만 사용하기가 편하진 않다. 차라리 기존 모터사이클처럼 변속 레버를 마련해 뒀다면 DCT를 훨씬 더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장거리 주행에서 만나는 가벼운 오프로드에서도 DCT는 큰 역할을 한다. 도심에서 아프리카 트윈을 몰 때와 비슷한 이유다. 심지어 아프리카 트윈은 엔진 특성을 변경하고 스로틀을 작동시키는 동안 클러치가 미끄러지는 양을 감소시켜 오프로드 접지력을 향상시켜 주는 ‘G’ 기능도 제공한다. DCT에, 이 같은 전자장비가 더해져 오프로드 경험이 없는 라이더라 할지라도 자신감 있게 주행을 이어 나갈 수 있다.
이 밖에도 아프리카 트윈은 동급 경쟁 모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구성을 자랑한다. 자동차에서는 널리 보급된 지 오래지만 모터사이클에서는 보기 어려운 애플 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 지원이 대표적이다. 덕분에 주행 중 시선 분산 없이 내비게이션이나 전화 등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고급유가 아닌 일반 휘발유 권장에, 1회 주유로 450km 가까이 주행할 수 있는 뛰어난 효율성도 장점이다.
디자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아프리카 트윈이 속한 대형 어드벤처 시장은 개성 넘치는 디자인을 가진 모델이 많다. 개성 넘친다는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호불호 강한 디자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프리카 트윈은 다르다. 전 세대 아프리카 트윈의 상징과도 같은 듀얼 헤드램프를 LED 주간주행등으로 재현한 얼굴, 24.8L의 넉넉한 연료 탱크로 볼륨감을 더한 차체, 혼다를 상징하는 트라이컬러 등이 더해져 모난 구석이 없으면서도 시선을 사로 잡는다.
물론, 누군가는 여전히 모터사이클에 DCT 같은 자동변속기가 적용됐다는 사실이 탐탁치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랬다. 하지만 아프리카 트윈과 긴 여정을 함께하고 보니 DCT 적용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모터사이클에 자동변속기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만 떨쳐낼 수 있다면 아프리카 트윈은 도심, 장거리 주행, 오프로드 등 어떤 곳에서도 편안함과 자신감을 향상시켜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