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하면 GM 본사와의 신차 개발 기획을 포함해 향후 미래 계획을 만들거나 차를 개발하는 것도 이곳에서 이뤄진다. 그리고 차를 생산하는 것은 물론이고 품질을 관리해 완성도 높은 차를 만드는 과정도 이곳에서 이뤄진다.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는 흔치 않은 풍경이다. 더욱이 부동산 광풍이 불고 있는 이 나라에서는 아파트 숲에 둘러싸인 자동차 공장은 말 그대로 희귀하다.
한국지엠 부평공장 서문으로 걸어간다. ‘높은 아파트에서 공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데 위장막을 씌운 신차라도 지나가면 보안은 어찌할까’ 괜한 걱정을 하며 출입증을 받았다. 역시나 스마트폰의 렌즈에는 보안 스티커가 붙었다. 눈을 가리고 귀를 열고 한국지엠 부평 공장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으러 간다.
# 뷰익 앙코르 GX, 미국 J.D 파워 신차품질조사 1위 차지
이날 한국지엠이 강조한 주제는 이것이다. 부평 공장에서 생산하는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의 형제 차 소형 SUV 뷰익 앙코르 GX가 미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 품질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라 연구, 개발은 물론 생산 현장에서의 능력도 인정받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상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이들이 강조하려는 내용이고 그 내막이 궁금했다. 왜 부평공장에서 만든 차가 품질 1위를 차지했을까. 우리나라에서 그리 판매 성적이 좋지 않은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미국에서는 왜 세그먼트 1위를 달릴까. 부평 공장에 있는 무엇이 이런 차를 만드는 원동력일까. 그래서 쉽지 않은 요청 끝에 소규모 인터뷰를 허락 받았다.
#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곳에는 여러 부서가 몽땅 들어있다. 이번에 만나는 곳은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의 엔지니어링센터. 그중에 이노베이션센터다. 올 초 실내를 마치 판교 어디쯤 있는 IT 기업처럼 꾸몄다고 한다. 흰색과 베이지의 벽 그리고 네모난 타일로 된 바닥 대신 카펫을 깔고 투명 유리 칸막이를 세웠다. 벽에는 채도가 높은 보라색, 노란색을 칠했고 라운지는 편안한 소파로 채웠다. 자동차 회사에서는 볼 수 없는 인테리어다.
오늘의 인터뷰는 총 4명. 한국지엠 부평 공장에서 품질 관리와 관련된 부서의 책임자들이다.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의 설계품질팀 김익회 부장은 품질 문제에 관한 CSI다. 문제가 발생하면 거꾸로 원인을 찾아가는 역할을 한다. 차량개발 담당의 박형규 부장은 차량 개발을 한다. 정확히는 프로그램 엔지니어링 매니저.
한국지엠의 생산품질팀 김효석 부장은 트레일블레이저와 앙코르 GX의 생산 라인에서 품질을 확인한다. 예전에 품질 관리라고 부르던 부서가 ‘품질 확인’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생산 부문 조립 담당인 박노일 부장은 그야말로 생산의 최일선에서 일한다. 각 생산 공정에 작업자를 어떻게 배치할지, 표준화를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고 품질을 확보하는 업무를 한다.
# 왜 이곳에서 연구, 개발, 생산한 차가 품질이 좋나요?
시작부터 가장 궁금한 내용을 물었다. 왜 품질이 좋을까. 더 정확히는 왜 미국에서 품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을까.
설명하기 복잡한 질문이라 생각했는데 답변은 간단했다. 우문현답. 품질을 관리하면서 가장 큰 장점은 ‘한 곳’에 모인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김효석 부장은 “이곳은 생산, 품질, 연구 부서가 함께 모여 있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해결이 빠르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보통 문제가 발생하면 한 달 정도 걸릴 내용도 부평에서는 바로 옆 부서에, 현장에 가서 물어보고 직접 해결하니 해결 기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통의 자동차 회사들은 품질 문제가 불거지면 연구소에 확인 요청을 하고 연구 개발 부서가 모여 회의를 하고 원인 분석을 위해 공장을 방문한다. 이 과정을 불과 10분 거리에서 해결이 되는 것이 부평의 장점이란 설명이다.
“조립 공정은 연구소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한다. 조립 품질을 개선하려면 직접 보여주고 설명할 것들이 많은데 여기서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기 때문에 업무 협조가 빠르고 정확하다.”며 “이런 과정을 거쳐 쉐보레 트랙스, 트레일블레이저, 뷰익 앙코르 GX와 같은 차들을 생산했다”고 박형규 부장은 말한다.
물론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나오는 그런 이야기도 나왔다. 예를 들면 “한국인의 손이 섬세하다.”, “빠르고 정확한 업무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만으로는 수많은 사람이 96%에 이르는 양품 생산율을 보이며 시간당 60대의 자동차를 찍어내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무엇이 다를까. 이번에는 GM의 시스템에 대해 물어봤다.
# 110년의 GM 자동차 생산 시스템, 한국 상황에 맞게 10여 년간 개선
“110년 동안 많은 노하우를 축적한 회사가 GM이다. 그 노하우가 프로세스로 정리되어 있고 스펙화 되어 있다.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는 이 노하우를 빠르게 가져와서 우리나라에 맞는 방식으로 적용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박형규 부장은 이른바 ‘노하우의 현지화’가 품질 향상의 밑거름이라고 말했다.
GM의 자동차 개발 노하우는 한국지엠 부평공장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의 특성을 살린 ‘플러스알파’를 더했다는 설명이다. 이 결과물은 곧 만날 수 있다. 2023년 국내 출시를 앞둔 신형 소형 CUV에도 해당 노하우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김익회 부장 역시 “GM은 기술을 계속 누적하면서 경험을 다음 차종에 반영하는 ‘퀄리티 체인’이 장착되어 있다”며 “2023년 부평에서 생산하는 새로운 CUV에도 이런 품질 관리 기법을 도입했는데 미국에서도 도입하지 않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우리나라에서의 성과가 지엠의 데이터가 되고 이를 글로벌 공장에 적용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며 “결과적으로는 GM이 CEO에게 전달되고 전 세계 공장에 해당 내용을 공유해 적용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 ‘회장님의 결단’ 대신 ‘시스템의 결단’이 통하는 회사
한국지엠은 GM의 글로벌 시장에서 소형 SUV와 CUV에 강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차는 북미로 수출된다. 같은 라인에서 다양한 옵션의 차를 혼류 생산하면서 1시간에 60대의 스피드를 유지하고 있다. 내년 출시하는 신형 CUV는 내수 물량은 창원에서 수출 물량은 부평에서 생산한다. 또, 부평에서 20~25만 대, 창원에서 20~25만 대를 생산해 연간 50만 대 규모를 달성한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신차 출시를 앞두고 품질 관리의 노하우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서는 ‘시스템’을 강조했다. 품질 관리 담당자의 판단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동일한 관리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설명이다.
김효석 부장은 “GM은 품질과 안전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다. 내부 캠페인으로 ‘퀄리티 컬쳐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품질 부분에만 한정했던 것을 전사적으로 확대했다”며 “회사의 업무, 품질에 문제를 발견한 경우 연구개발부터 생산의 누구라도 문제를 지적할 수 있으며 익명으로 개선을 지적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김 부장은 “부품별 품질 관리도 이중 삼중으로 하고 있고 전 세계 사업장 중에서 단 하나의 사업장에서라도 품질 문제를 제기하면 글로벌 리더십으로 리포트가 전달되는 프로세스를 갖고 있어서 탄탄한 기본기를 갖출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와 뷰익 ‘앙코르 GX’ 그리고 J.D 파워
인터뷰 공간 옆에는 부평공장에서 생산하는 차 두 대를 전시해 놓았다. 건물 3층인데 어디선가 차를 가져왔다. 대부분의 부품과 기능을 공유하는, 그리고 생산 시설까지 공유하는 ‘형제 차’라지만 둘의 겉모습은 완연하게 다르다. 날카로운 이미지와 날렵한 선을 위주로 만든 트레일블레이저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북미 등의 국가에서 인기가 좋다. 이 차를 생산한 노하우는 올 해 양산 준비하고 내년 출시할 예정인 소형 CUV에 고스란히 적용했다.
미국 J.D 파워의 신차품질 조사에서 뷰익 앙코르 GX는 세그먼트에서 최고의 품질을 가진 차로 선정됐다. 신차품질조사는 신차 구입 후 3개월 동안 경험한 품질에 대해 불만사항을 집계한 것으로 100대당 불만 건수를 집계해 측정한다. 최근에는 애플의 카플레이, 안드로이드 오토 등 인포테인먼트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불만사항 집계 내용에도 해당 기능에 대한 조사 항목이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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